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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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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스런 21세기 경제과학

냉온탕 오가는 ‘경제 예측’ 빗나가기 일쑤… 비현실적인 교조주의 버려야
등록 2009-07-30 18:02 수정 2020-05-03 04:25
경제학자들의 경제예측은 상황따라 조변석개다. 지난 7월20일 주가는 급등하고 환율은 하락했다. 사진 연합

경제학자들의 경제예측은 상황따라 조변석개다. 지난 7월20일 주가는 급등하고 환율은 하락했다. 사진 연합

요즘 어쩌다 보니 라디오 방송을 하나 맡게 되어 매주 ‘지난주의 세계경제 동향’을 정리해 읊는 일을 하고 있다. 하여 세계경제의 향방에 대한 각종 기관과 경제학자들의 전망을 소개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게 그야말로 조변석개다. 어떤 주에는 우울한 목소리로 “세계경제 동향이 어둡다고 합니다”라고 했다가 바로 그 다음주에는 “밝다고 합니다” 하는 식으로 냉온탕을 오가는 일이 몇 번 반복됐다. 그러다가 말하는 나도 청취자에게 미안하고 민망해 “이번주에는 어둡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도 여러 번 바뀌었으니 다음주에도 또 바뀔지 모릅니다”라는 싱거운 소리를 위로랍시고 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어둡다’ ‘밝다’를 툭하면 내뱉는 이른바 세계경제의 ‘석학’이라는 이들이 동일 인물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헷갈리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입방정일까? 시간이 나면 두어 해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동안 이런저런 경제학자들과 기관들에서 나온 보고서와 논문과 논평들을 한번 찾아보시길. 터무니없이 빗나간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스스로의 주장과 예측이 어째서 어떻게 현실에 빗나갔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고도 또 계속 그들은 무언가 ‘예측’과 ‘진단’을 쏟아놓는다. ‘세계 최고’라는 명망을 둘러쓴 이들의 행태만 이런 것이 아니다. 국내의 크고 작은 매체들과 기관, 개인들이 쏟아놓는 온갖 말들을 보라.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의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혹시 21세기 경제과학의 수준은 파라셀수스 이전의 의학 발전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 14세기 유럽을 여행하던 어느 무슬림 의사가 남긴 다음의 기록은 당시 유럽 의학 수준을 잘 보여준다. “정신이 이상한 처녀가 찾아왔다. …의사는 그녀의 병든 영혼을 정화한다고 머리 가죽을 조금 잘라내어 노출된 두개골에 소금을 뿌렸다. 처녀는 고통을 참지 못하여 발광하다가 쇼크로 즉사하고 말았다….” 16세기의 괴짜 의사 파라셀수스는 이러한 중세 의학을 한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매도하고 당시의 연금술을 기초로 의화학을 발전시켜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의학 발전의 길을 제시했다. 비록 그는 당시 의학계에서 축출당했고 또 그가 단번에 현대 의학으로 발전을 이룬 것도 아니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유럽인들은 그 뒤에도 상당 기간 이러한 돌팔이짓을 대단한 과학이나 되는 양 떠받들면서 숱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어떤 문명이건 스스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스스로가 전제로 삼고 있는 진리들까지도 상황에 따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철저한 자기성찰의 능력을 잃고 위기가 찾아온 순간에도 기존에 외워오던 주문이나 계속 읊어대는 문명이라면 파멸과 쇠퇴밖에 기다릴 것이 없다. 조앤 로빈슨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경제학 공부의 목표는 경제학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다.” 뛰어난 경제학자로서 정직하려고 노력했던 이 중 하나인 그녀의 말은 그래도 20세기의 경제학은 아직 자기성찰의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 ‘현대 경제학을 정밀 과학으로 정초’했다는 온갖 푸닥거리와 함께 매년 쏟아져나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황은 7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21세기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유구무언이며, 입을 여는 이들은 횡설수설이며, 지난 몇십 년간 단물을 빼먹은 ‘시장이 해법이다’란 주문은 이 사태 앞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앤 로빈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경제학 공부의 목표는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다”가 새 시대의 정답이 돼버렸다.

이러한 나의 비관주의가 경솔한 것으로 판명되기 바란다. 경제학자들이 이제부터라도 과학자로서의 정신을 회복해 비현실적인 교조를 과감하게 버리거나 의심함으로써 역동적인 논의의 장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려면 파라셀수스와 같은 지적인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설익고 파산 난 경제 이론을 가지고 경제를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들 머리 가죽을 째려 들지도 말아야 한다. 한심스런 상태의 경제과학, 그리고 그에 근거한 선무당 짓이 현재 경제위기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font color="#638F03">*‘홍기빈의 돈보다 밥’은 771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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