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6일 러시아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브릭스, 즉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의 정상들이 사상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지금까지 세계 기축통화의 역할을 해왔던 미국 달러의 전횡을 규탄하고 대안적인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선 이 나라들 모두가 미국 국채 보유를 줄여가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채권, 즉 특별인출권(SDR) 보유를 늘리면서 이를 무역 결제에 사용하도록 하자고 했다. 만약 이 구상이 실현되면 달러는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현재 이 네 나라가 보유한 미국 채권은 1조달러가 넘는데, 이는 미국 국채 해외 보유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 나라들이 달러를 투매하기 시작하면 달러 가치의 하락이 벌어질 것이고, 달러를 보유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도 앉아서 자산 가치 하락을 보고 있을 수 없는 만큼 또 달러 투매에 나서게 될 것이니 급격한 달러 가치의 파괴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실제로 브릭스 정상 회담 중 이 논의가 흘러나오자 10년짜리 미국 국채 수익률이 4%를 돌파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이 나라 중앙은행들(특히 중국)도 달러 하락으로 손해를 보기는 마찬가지이니 당분간 극적인 조처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이번 계획은 “10~20년이라는 장기적 시간 지평”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루비니 등 논평가들은 그 정도 시간이면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이나 유럽을 떠나 이 4개국, 특히 동아시아로 이동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브릭스는 지금 길게 뻗어버린 세계경제에서 유일하게 성장 동력이 움직이고 있는 지역이다.
만약 이 나라들이 달러를 거치지 않고 자국 통화로 직접 무역을 결제하거나 SDR를 사용한다면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2. 중국의 홀로서기‘바이 차이나’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 중앙정부는 경제위기를 맞아 지난해 11월 4조위안(약 750조원)의 대규모 부양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 돈을 특수한 경우만 빼고는 모조리 중국제를 구매하는 데 써야 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정도의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선다는 소식에 미국이나 유럽 등도 혜택을 볼 것을 은근히, 아니 마구 티나게 기대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바이 차이나’ 조처가 내린 것이다. 한 예로, 50억유로 규모의 풍력발전 계획에서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계약을 따냄으로써 이 분야에서 비교 우위를 내세우던 유럽 쪽의 강렬한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히 보호무역주의라는 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 경제의 구조 전환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4조위안은 그 3분의 1 정도가 국내의 농업 진흥과 관련된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병목이 발생한 농업 부문을 개선해 내적 안정성을 취하겠다는 조처다. 그런데 또 다른 3분의 1은 대부분 철도·공항·전력 설비 등과 같은 기초 인프라 확충 비용이며, 이것을 원래 비교 우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이나 유럽의 기술을 내적으로 대체하는 데 쓰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중국은 농업은 물론 중후장대한 산업기술까지 갖춘 경제로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닐까. 미국과 함께 지구적 경제의 두 기둥을 이루던 중국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자체적인 안정성을 가진 경제로 전환하는 것인가?
3. 서구의 응전드디어 지난 6월23일 미국은 유럽과 함께 공동으로 중국의 ‘바이 차이나’를 불공정 무역 행태로 몰아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보호무역주의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도 올해 초 중국이나 다를 바 없는 ‘바이 아메리카’ 조처를 내린 구악이 있으며,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그 뒤 세계 20개 선진국 사이에 이에 상응하는 보호무역 조처가 벌써 50개나 내려졌다고 한다.
재정과 금융 모두에서 가랑이가 찢어지는 이 서구 국가들이 앞으로도 자유무역주의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이들은 내심 그동안 ‘개방된 세계경제’에서 중국이라는 알진 땅으로 들어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게 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중국의 이런 식의 독자 행태가 브릭스 4개국의 행보와 맞물리면서 미국과 유럽의 지배 아래 있는 현재 지구적 경제의 구조 변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지각변동을 알리는 미세한 신호를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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