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고든 브라운, 잭 웰치 세 사람에게는 두 개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지난 30년간 전 지구를 풍미한 기업 및 금융 체제에서 그 기둥에 해당하는 제도들을 창출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둘째, 지난 몇 달간 자신들이 만들고 상징하던 그 기둥들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발언을 내뱉었다는 점이다. 그린스펀은 몇 달 전 은행의 국유화를 권유했으며, 잭 웰치는 두 주 전 주주가치 경영이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일갈했으며, 고든 브라운은 신자유주의가 끝났다면서 좀더 진보적인 사회경제 정책으로 전환할 때라고 선언했다.
허무하다. ‘금융 허브’ 아이슬란드는 파산해 ‘앞으로 30년간 정어리만 먹어야 한다’는 소문이다. ‘강소국’ 금융 허브 아일랜드도 비슷한 신세가 되었고, 21세기 바벨탑 두바이는 자칫 유령촌이 될 수도 있다. 전세계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마치 뉴턴역학과 같은 권위를 누려온 경제 이론과 교과서들은 천하의 헛소리가 되어 산산이 날아갈 위험에 처했으며, 만약 앞으로 2년만 주가가 이 모양으로 처박혀 있다면 정말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그 구체적 작동 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무쌍했다. 지난 30년간의 작동 양식은 종종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라고 불린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 만물과 인간 만사를 모두 ‘자산’으로 보아서 금융 시장의 안과 밖으로 넘쳐흐르는 돈의 흐름에 내맡기는 것이 경제, 나아가 사회 전체를 조직하는 최상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제, 이것이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좌파 경제학자들이 휘두르는 수사가 아니다. 의 간판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의 요즘 연재 칼럼 제목이다.
아직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을 ‘돈벌이’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드는 질서가 앞으로도 유지될지 어떨지는. 하지만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밥벌이’는 어찌 되는가. 이 두 가지는 본래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지만, 지난 30년간의 극단적인 금융화 물결 속에서 더욱더 하나로 뭉그러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여전히 밥을 먹는 유일한 길은 돈을 버는 것이며, 또 돈벌이에 매진하면 밥벌이는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일까. 밥벌이와 관련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정말로 화폐경제와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가. 그러한 명제를 철석같이 믿고 지난 30년간 열심히 연기금에 돈을 갖다바친 미국의 노인들은 왜 지금 졸지에 쪼들리는 신세가 되었는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돈벌이 문제에 무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돈벌이’의 세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지금, 그보다 몇백 배 중요한 ‘밥벌이’의 문제 또한 그 이상의 비중으로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은가. 그리고 그 두 가지의 문제가 어떻게 결합되고 또 상충하면서 미래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가를 살펴보면 더욱 좋지 않을까. 돈벌이는 돈벌이고 밥벌이는 밥벌이다.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어떠한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어제의 구호가 ‘꽃보다 돈’이었다면, 이제는 ‘돈보다 밥’이 아닐까. 코스피가 2000으로 치닫던 시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한 투자운용사의 대표는 자신의 책 제목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고 붙였다. 그 말에 반해 투자운용사의 펀드에 돈을 맡겼던 이들은 그 뒤 벌어진 롤러코스터와 같은 주가 하락 속에서 ‘돈이 악마보다 잔혹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듯하다. 결국 돈이란 꽃보다 아름답고 악마보다 잔혹한 팜므파탈에 가깝다는 게 밝혀진 셈이다. 그 팜므파탈에게 버림받고 몸부림치는 이에게 집에서 밥상을 함께하던 아내를 생각해보라고, ‘돈보다 밥’이라고 나지막이 말해주면 위로가 될까.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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