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수 지은이 baseahn@korea.com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생필품은 무엇일까? 쉽지 않은 질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추측조차 어려운 난제만은 아니다. 생필품 매장을 대표하는 곳을 대형 할인마트로 보고, 그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을 답으로 보는 데에 무리가 없다면 말이다. 그것은 바로 ‘커피믹스’다. 국내 최대 할인마트는 올 들어 5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제품군을 커피믹스라고 발표했다.
커피, 설탕, 프림의 황금비율. 화려한 알루미늄박 필름에 들어 있는 커피믹스의 실루엣이다. 한낱 분말 또는 과립의 혼합물이지만 따끈한 물에 녹는 순간 괴력을 발휘한다. 쌉쌀한 듯 구수하게 감도는 그윽한 단맛. 한번 입에 익은 사람은 순식간에 포로가 된다. 하루 한두 잔은 기본이고 마니아라면 몇 잔씩 습관적으로 마신다. 어디서든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니 편리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발전해가는 커피 소비문화를 건강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구성 원료들을 도마 위에 올려보자. 먼저 커피는 유해 여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카페인과 같은 각성물질이 ‘창’이라면 폴리페놀과 같은 항산화물질은 ‘방패’와 같다. 즉,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커피에 대한 선악 구분은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두 번째 물질인 설탕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유해성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문제는 세 번째의 프림이다. 커피 크리머의 또 다른 이름인 프림은 문제가 많은 물질이다. 프림을 보면서 우유를 연상한다면 순진한 사람이다. 식물성 유지, 카세인나트륨, 제이인산칼륨, 실리코알루민산나트륨…. 세포에 원형질이 있다면 이 물질들은 프림의 원형질이다. 여기에 향료, 색소 등이 추가된다.
우선 프림의 뼈대와 같은 식물성 유지를 보자. 이것은 인공경화유다. 가공식품 유해성 논란의 첨단물질인 트랜스지방산이 당연히 똬리를 틀고 있다. 그 뒤에 늘어서 있는 낯선 물질들은 무엇일까. 기능은 조금씩 다르지만 통틀어 유화제로 이해하면 된다. 우유처럼 보이게 하려고 사용하는 첨가물이다. 물론 화학물질이다. 모 커피믹스의 깊은 풍미를 유독 사랑하는가? 그것은 향료의 작품이다. 커피믹스로 만든 이른바 ‘다방커피’ 한 잔을 마셨다면 결국 정제당을 큰 숟갈 가득 먹은 것이고, 심혈관 질환의 주범인 트랜스지방산을 먹은 것이며, 수많은 화학물질을 먹은 것이다.
커피는 기호음료를 대표한다. 이젠 기호음료 소비문화도 건강이라는 틀 위에 올려놓고 다시 재단해야 한다. 커피믹스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을 뵌 것은 약 30년 전이다. 당시는 인스턴트 커피조차 귀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변해 있다. 바람직한 기호음료 문화란 무엇일까. 가급적 가공을 적게 한 차를 즐기는 것이다. 원두의 ‘블랙 맛’을 배워보자. 다방커피가 현란한 환락가의 맛이라면 블랙커피는 칼칼한 여염집의 맛이다. 우리 몸은 후자의 맛을 더 좋아한다. 자연의 맛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학자 데버러 럽튼은 “인류의 위험은 자연적인 것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변해왔다”고 갈파했다. ‘생필품 1위 커피믹스’라는 현실을 보니 그 말의 뜻이 비로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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