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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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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예찬

등록 2008-08-05 00:00 수정 2020-05-03 04:25

비타민C는 사과의 두배, 각종 영양소 풍부하고 당부하지수는 낮은 한여름의 오아시스

▣ 안병수 지은이

수박과 사과. 어느 쪽이 비타민C가 많을까? 십중팔구는 “사과”라고 답할 것이다. 수박은 시지 않지만 사과는 시니까. 비타민C의 트레이드마크가 신맛 아닌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대답은 틀렸다. 비타민C는 사과보다 수박에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 수박이 약 두 배나 된다.

흔히들 수박은 ‘맛으로 먹는 식품’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달기만 하고 물이 많아 영양분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결코 그렇지 않다. 수박에도 유익한 성분이 꽤 많이 들어 있다.

이는 비단 비타민C만 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성분들을 보자. 몸에서 비타민A로 변하는 베타카로틴은 과일 가운데 수박이 최고 수준이다. 또 엽산이나 니아신을 비롯한 비타민B 그룹도 고루 들어 있다. 미네랄은 어떤가. 마그네슘, 셀렌 등은 복숭아보다 많다. 칼슘, 아연, 인, 철 등도 다른 과일에 뒤지지 않는다.

수박의 자랑은 뭐니뭐니 해도 ‘붉은 옷의 천사’, 리코펜이 풍부하다는 데 있다. 저 유명한 천연 항산화제다. 이 물질 이름을 대면 토마토가 생각날 것이다. 토마토를 웰빙 식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이어서다. 이 리코펜도 실은 수박에 더 많이 들어 있다.

이토록 호화 진용을 갖추고 있음에도 수박은 왜 전문가의 사전에서 소외돼 있을까? 수박을 추천하는 건강 전문가는 흔치 않다. 이유는 바로 ‘당지수’(glycemic index) 때문. 수박은 과일치고는 당지수가 꽤나 높은 식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 연구팀의 자료를 보면, 수박의 당지수는 72다. 당지수가 70이 넘는 식품은 ‘고당지수식품’으로 분류한다. 이런 식품은 혈당치를 급상승시키고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당지수의 기본 이론이다. 그렇다면 역시 수박은 배척해야 할 식품인가?

여기서 당지수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시드니대학 제니 밀러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당지수는 좋은 식품과 나쁜 식품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 맹점을 가지고 있지요. 일부 식품에는 당지수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탄수화물 함량이 극히 낮은 식품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런 식품에는 또 다른 지표가 필요해집니다. ‘당부하지수’(glycemic load)라는 새로운 개념이에요. 비록 당지수는 높더라도 당부하지수가 낮으면 좋은 식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박이 당지수가 높은 이유는 섬유질이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또 수분이 많다는 점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박에는 당분을 포함한 탄수화물이 무척 적게 들어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혈당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이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 밀러 교수가 설명하는 ‘당부하지수’다. 이 값이 10 이하면 좋은 식품인데, 수박의 당부하지수는 겨우 4다.

이 이론으로 수박과 빵을 비교해보자.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베이글이라는 빵이 있다. 이 빵의 당지수는 72다. 수박과 똑같다. 그러나 두 식품의 당부하지수는 크게 차이가 난다. 베이글이 25이니 수박의 6배가 넘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탄수화물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번 먹는 양을 기준으로 베이글에는 탄수화물이 35g 들어 있는 데 비해 수박에는 6g밖에 없다. 베이글은 혈당 관리에 불리한 반면 수박은 안전하다는 뜻이다.

당지수가 높다고 수박을 경계하는가? 오해를 씻자. 안심해도 된다. 수박은 비만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비상식적으로 많이만 먹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수박의 여러 유익한 성분들이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줄 터이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수박밭은 사막의 오아시스. 이 더위에 주변에서 손쉽게 수박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마음껏 즐기자.

■ ‘수박+요구르트’는 황금 콤비

자연이 선사한 항암물질, 리코펜. 이 성분은 보통 식품의 세포벽 안쪽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이 성분이 풍부한 식품은 살짝 익혀먹는 것이 좋다. 가열하면 조금씩 우러나게 되고, 우리 몸 안에서 더 잘 흡수된다. 익힐 때 기름을 조금 쳐주면 더욱 좋다. 리코펜이 기름에 녹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토마토는 이렇게 요리해서 먹는 것이 가능하다. 수박은 어떨까. 수박도 익혀먹을 수 있을까? 당장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기름과 함께 먹는다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다. 유제품의 도움을 받아보자. 유제품엔 대개 기름 성분이 들어 있다. 그 기름으로 리코펜을 불러내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이 ‘호상 요구르트’다. 수박을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서 요구르트를 듬뿍 올려놓고 함께 떠먹어보자. 영양도 만점, 맛도 만점이다. 수박의 달콤한 맛이 요구르트의 담백한 맛과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다. 단, 요구르트는 설탕이나 첨가물이 사용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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