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품이 있다고 치자.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비율이 대략 7:4:1인 식품. 지방이 30% 조금 넘게 들어 있는 셈인데, 이 지방의 절반 가까이가 포화지방이다. 좋은 식품일까, 나쁜 식품일까?
십중팔구 나쁜 식품이라 답할 것이다. 왜? 포화지방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포화지방은 해로운 물질의 대명사 아닌가. 콜레스테롤과 잘 어울리고, 동맥경화나 심장병을 일으키는 물질이라고 수없이 들어왔다. 당연히 나쁜 식품이라고 답할 수밖에.
그러나 그렇게 답한 당신은 안됐지만 불경죄를 지었다고 고백해야 한다. 당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었을 가능성이 큰, 그 은혜를 매도했기 때문이다. 포화지방은 바로 모유와 똑같은 식품이다.
그런가? 모유에 포화지방이? 그것도 지방의 절반 가까이나? 모유는 인위적인 개념의 식품이 아니다. 조물주의 작품이다. 허투루 묘사할 수 없는 완벽의 상징이다. 그런데 포화지방이라니. 뭐가 잘못된 것일까? 조물주의 실수인가?
포화지방산. 포화지방을 이루는 지방산이다. 요즘 지방 연구가들이 이 지방산을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결론부터 보자. 포화지방산 자체는 해롭지 않다는 것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즉, 포화지방도 해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천동설을 믿는 동네에서 난데없이 ‘지구가 돈다’고 떠들어대는 격이니까. 미국에서 지방산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매리 에닉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트랜스지방산에 대한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일이에요. 미국 제유업계는 당황하기 시작했죠. 천금 같은 사업 기회를 송두리째 잃게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애꿎은 동물성 지방을 걸고넘어진 겁니다. ‘나쁜 것은 동물성 포화지방’이라고 말이죠. 당시 생산되던 쇼트닝·마가린은 모두 식물성 지방이거든요. 일부 학자도 적극 협조했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포화지방이 트랜스지방산에 오염된 인공 경화유였다는 사실이 훗날 밝혀졌으니까요. 그때 잘못된 상식이 깊이 뿌리를 박은 건데요, 안타깝게 아직까지도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이 포화지방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트랜스지방산에 오염된 인공 경화유가 실험에 사용됐다’는 대목이다. 인공 경화유란 액상 유지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든 굳은 기름. 흔히 쇼트닝과 마가린을 가리킨다. 이런 기름엔 포화지방이 많지만 트랜스지방산도 많을 수밖에 없다. 실험 결과는 당연히 나쁘게 나올 터. 결국 포화지방이 누명을 썼다는 이야기다. 도둑은 도망가고 선량한 시민이 대신 옥살이를 한 꼴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공 경화유라도 트랜스지방산만 없으면 괜찮은 것 아닐까? 문제의 주범이 트랜스지방산이었다니 말이다.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다. 트랜스지방산 없이도 인공 경화유를 만들 수 있다. 조만간 상업적으로도 생산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싱가포르의 지방 연구가인 리처드 세아가 해주고 있다.
“돌같이 단단한 인공 경화유가 있습니다. ‘완전포화지방’이라고 하죠. 여기에는 트랜스지방산이 없어요. 이 완전포화지방으로 쇼트닝이나 마가린을 만들면 트랜스지방산이 없는 경화유가 되죠. 하지만 이런 경화유도 경계해야 합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지방산의 분자구조가 미세하게 바뀌거든요. 이런 지방 역시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대사되지 않습니다.”
포화지방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연의 포화지방과 인공의 포화지방이다. 자연의 포화지방은 신선한 것이라면 해롭지 않다. 그러나 인공의 포화지방은 트랜스지방산이 있건 없건 해롭다. 그것이 지방산 상식의 가장 새로운 버전이다.
아직도 우유나 버터, 쇠고기 같은 동물성 식품을 비난하는가? 그 이유가 포화지방이 많아서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흘러간 옛 노래를 읊조리는 것이다. 굳이 모유의 지방산 비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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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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