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에서 파는 식품들을 사다 흰쥐를 키워봤어요. 뒤룩뒤룩 살이 찌더라고요.” 우스갯소리 같은 이 이야기는 실화다. 30여 년 전, 미국 의회 영양문제특별위원회 토론회장에서 전문가들끼리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이 이야기 속에 오늘날의 식생활 문제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슈퍼에서 파는 식품들. 보나 마나 인스턴트 식품, 레토르트 식품, 패스트푸드 등일 것이다. 과자나 빵과 같은 기호식품도 물론 빠질 수 없다. 이른바 ‘가공식품’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이 식품들은 왜 실험동물까지 살찌게 하는 것일까? 비단 살만 찌게 하는 것이 아닐 터다. 고혈압·심장병·뇌졸중·당뇨병·암 등 이른바 ‘현대병’의 원인 식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들 식품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새삼스러운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원료가 사용된다’는 점이 우선 눈에 확 들어온다. 잘못된 원료란 정제당, 정제가공유지, 식품첨가물 등이다. 이 세 원료군이 손가락질받는 이유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데 있다. 조물주는 설탕과 같은 정제당을 만든 적이 없다. 트랜스지방산이 들어 있는 가공유지도 만든 적이 없고, 화학물질인 첨가물은 더욱 만든 적이 없다. 비자연 물질인 이 세 원료군은 그래서 생체 내에서 대사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모든 문제는 그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럼, 뭘 먹으란 말인가? 사실 현대인들이 즐겨먹는 식품을 보면 이 세 원료군에서 자유로운 건 없는 듯 보인다. 세 원료군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들어 있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 사람들처럼 생활하라는 이야기인가?
그럴 리 없다. 방법이 있다. 물론 저절로는 안 된다. 연구가 필요하다. 자연식품의 철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제빵 기술자인 리오넬 푸알란은 그것을 ‘복고혁명’(retro-innovation)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옛 방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그의 빵공장에는 첨가물이란 것이 없다. 정제당도, 정제가공유지도 없다. 하지만 그 공장에서 나오는 빵은 맛이 기가 막히다. 몸에도 좋음은 말할 나위가 없을 터. 그 길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식품업계가 해야 할 일이다.
소비자도 할 일이 있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잘못을 고치는 일이다. 그동안 어떻게 식품을 소비해왔는가. ‘수동적인 자세’ 또는 ‘무관심’이 대다수 소비자 행동의 공통분모가 아니었을까. 사실 설탕 범벅인 캔디바가, 마가린으로 튀긴 감자튀김이, 인공조미료 전시장인 라면이 해롭다는 것쯤은 누구든 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알면서도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 그것은 모순이다. 그 행동 속에는 ‘나와는 관계가 없겠지’ 하는 깊은 오해가 숨어 있다. 그런 모순과 오해가 존재하는 한, 식품시장의 변화는 요원하다. 식품업계가 절대로 연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식품시장이 지탄의 대상이 된 데에는 소비자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 탓도 크다.
식품시장은 식품만 팔고 사는 곳이 아니다. 식품회사는 식품과 함께 양심을 파는 곳이요, 소비자는 식품과 함께 건강을 사는 곳이다. 식품시장의 건전성에 식품회사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고 소비자의 행복이 걸려 있다. 식품회사건 소비자건 그 시장을 소중하게 육성해나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자연주의자가 아니다.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도 아니다. 식생활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자연주의자가 돼 있었다. 단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한다. 최소한 식생활만큼은 자연과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과 멀어지면 질병에 가까워진다”는 괴테의 말, “야생동물은 병이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현대인이 늘 음미해야 할 진리다. 19세기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갈파했듯,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이기에.
그동안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준 에 감사한다. 아울러 졸고를 사랑해주신 독자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린다.
안병수 저자
*‘안병수의 바르게 먹자’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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