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인체와 환경에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에는 반드시 경고 표시를 하게 돼 있습니다. 이때 경고용 그림문자는 해당 언어를 알지 못해도 의미를 짐작할 수 있도록 매우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인화성 물질에는 불꽃 모양을 새기고, 수생환경 유해성 물질에는 죽은 물고기를 그려넣는 것처럼 말이죠.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급성 독성물질의 경고 표시는 ‘뼈’입니다. 해적 깃발로 알려진 ‘졸리 로저’(Jolly Roger)와 흡사한 두개골 아래 두 개의 대퇴골이 ×자 형태로 교차된 그림문자는 보기만 해도 섬찟해서 독성물질 경고로 안성맞춤이지요.
예로부터 뼈는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뼈가 드러난다는 건 인간의 생존에 심각한 위해가 가해졌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 불길합니다. 또한 뼈는 사람이 죽은 뒤 살과 내장이 모두 썩어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뼈는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늘 죽음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마련이었지요.
하지만 인류학자 이상희 교수는 저서 <인류의 기원>에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뼈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수백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은 크지도 강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존재였습니다. 겨우 1m 남짓한 작은 키에, 날카로운 발톱도 딱딱한 등껍질도 치명적인 독도 없는 왜소한 영장류에 불과했지요. 당연히 머리도 작았고, 뇌도 작았습니다. 뇌는 크기 대비 에너지 소모량이 매우 많은 기관이기에(인간의 뇌는 질량으로만 따지면 표준 체중 대비 2% 남짓에 불과하지만, 인체가 필요로 하는 전체 열량의 20%를 소모할 정도로 유지비가 많이 드는 기관입니다) 이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려면 먼저 추가적인 에너지원부터 구해야 합니다. 그런 에너지원을 어디서 찾을까요? 인류는 그 해답을 뼈에서 찾았습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대형 육식동물이 사냥감의 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내장입니다. 내장은 부드럽고 영양가도 풍부해서 먹잇감으로는 최고급 부위거든요. 그래서 사냥꾼이 사냥감의 내장으로 배를 불리고 돌아서면, 남은 근육과 피하지방은 하이에나와 독수리 등 사체 청소부의 몫이 됩니다. 작은 부스러기 살점과 질긴 가죽 아래 조직은 파리와 송장벌레 등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시식성(屍食性) 곤충이 차지합니다. 이 치열한 각축장에 작고 힘없고 소화능력도 떨어지는 인류의 조상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냥꾼과 사체 청소부와 시식성 곤충이 다녀간 뒤에도 여전히 남는 부위가 있으니, 바로 뼈입니다. 인류의 조상은 직립보행에 따라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돌을 들어 뼈를 부수고 깨뜨려 그 안에 든 골수를 취했습니다. 골수는 지방 함량이 80% 정도로 고칼로리 조직입니다. 또한 골수는 혈액을 생성하는 조혈기관으로 철분과 인 등 미네랄과 각종 비타민이 골고루 든 종합영양제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작은 고인류가 먹을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긴 시간에도 변질되지 않는 저장성 좋은 부위이기도 합니다.
2019년 발표한 이스라엘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부서지지 않은 뼈 속의 골수는 최장 9주간 상하지 않은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40만 년 전에 살던 인류의 조상이 골수가 든 뼈를 일종의 ‘통조림’처럼 이용해 안정적인 열량 공급원을 마련했으리라고 유추했지요. 그야말로 인류는 다른 동물들의 ‘뼈를 때리고 등골을 뽑아’ 성공한 셈입니다.
이렇게 뼈로 뇌를 키우고 인간다운 삶을 얻게 된 인류가, 최근 들어 늘어난 평균수명을 온전히 사람답게 즐길 수 없게 하는 것 또한 뼈입니다. 사람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 질환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암과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 등을 말할 것입니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10대 사망원인에서 이 네 질환이 전체 사인(死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들 질환은 노령층뿐 아니라 이보다 젊은 세대의 생존에도 치명적입니다.
그러나 유독 노인에게 더 위험한 질환이 있으니, 바로 골절입니다. 국내의 한 연구진이 고관절 골절을 겪은 노년층 790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1년 사망률은 16.7%, 5년 사망률은 절반에 가까운 45.8%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어서, 미국은 고관절 골절을 겪은 노인의 1년 사망률이 남성 31.4%, 여성 23.3%이며, 영국도 남성 33.22%, 여성 28.7%로 매우 높았습니다. 이 외에 노인에게 자주 일어나는 골반 골절과 척추 골절 역시 1년 사망률이 10% 안팎이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상지(팔) 골절, 쇄골 골절, 갈비뼈 골절도 같은 기간에 골절을 겪지 않은 노인보다 숨질 확률이 5~10% 이상 높습니다. 이쯤 되면 고령층에게 관절 골절은 일시적 불편함이나 장애를 유발하는 귀찮은 질환이라기보다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폭탄에 가깝습니다.
노인에게 골절이 이토록 위험한 이유는, 그만큼 노인의 뼈가 잘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뼈는 연골이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말랑말랑하고 유연합니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뼈는 더 길어지고 단단해집니다. 뼈의 길이 성장은 사춘기를 지나면 거의 마무리되지만, 뼈의 내부 다지기는 이후에도 계속돼 성인이 되면 청소년기보다 12~25% 골밀도가 높아집니다. 이렇게 단단해진 상태로 그냥 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뼈의 밀도는 남성 30살 전후, 여성 40살 전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이후 매년 0.3~0.5%씩 감소합니다. 사람의 뼈는 애초 표준체중의 4~5배는 거뜬히 견딜 만큼 튼튼하게 설계됐기에, 어느 정도 밀도가 줄더라도 대개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뼈의 성김 현상이 인체 버팀목의 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엉성해질 때입니다. 보통 골밀도 검사 수치인 T-스코어(값)가 -1.0 이상이면 정상, -1.0~-2.5면 골감소증, –2.5 이하면 골다공증으로 진단됩니다. T-스코어가 –2.5라는 것은 정규분포를 따른 그래프에서 하위 2% 이하임을 뜻합니다. 즉, 100명을 골밀도순으로 쭉 줄을 세웠을 때 앞에서 두 번째에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최저 수치인 것이죠.
나이 들면 이 정도의 낮은 골밀도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골다공증 전문 잡지 <본조르>에서 국민건강영양조사의 골밀도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결과, 국내 50살 이상 성인의 골다공증 유병률은 남성 7.5%, 여성 37.5%로 여성이 남성의 5배에 이릅니다. 이는 남성의 뼈가 더 단단해서라기보다, 여성만 겪는 폐경기의 호르몬 수치 급변화로 일어나는 부작용의 결과입니다.
뼈는 얼핏 단단한 기둥처럼 보이지만 콘크리트나 철근처럼 무생물이 아니라, 뼈세포(Osteocyte)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존재입니다. 무생물과 생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항을 통한 불변과 변화를 통한 균형도 그중 하나입니다. 무생물인 바위가 언제나 같은 모양인 것은 바위를 구성하는 성분이 매우 단단하기에 외부 자극에 영향받지 않아 처음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뼈가 언제나 변치 않고 몸을 단단히 지탱하는 것은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Osteoblast)와 뼈를 파괴하는 파골세포(Osteoclast)가 동시에 존재해, 파골세포가 뼈조직을 파괴해 재흡수를 시키는 것만큼, 조골세포가 빈 부분을 메꾸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뼈는 연간 뼈조직의 약 10%가 이런 식으로 교체되는데, 조골세포에 비해 파골세포가 너무 활성화돼 있으면 골다공증이 생기게 됩니다.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은 파골세포의 기능을 억제하므로, 남성의 골밀도가 서른 즈음 최고점을 찍는 데 견줘 여성의 골밀도는 마흔까지는 꾸준히 증가합니다. 그러다가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억제에서 풀려난 파골세포의 활성화로 골밀도가 빠르게 떨어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폐경기 전후 5~7년 지나면 몸이 적응해 골밀도 저하 속도가 다시 느려지는데, 그 결과는 여전히 남습니다. 남성은 여성처럼 급격한 호르몬 변화 현상을 겪지 않기에 골다공증 발생 비율이 낮지만, 나이에 의한 골밀도 저하는 피할 수 없어 전체의 46.8%에서 골감소증이 나타납니다. 또한 골감소증과 골다공증 모두 나이에 비례해 발생함에 따라 70대 이상에게 골감소증이 50대보다 4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나이 들수록 골절 위험은 기하급수로 커집니다.
뼈의 가장 기본은 버팀목 기능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뼈가 이 버팀목 기능을 더 오래, 더 제대로 수행하도록 돕는 것은 뼈를 버팀목으로 계속 쓸 수밖에 없게 하기입니다. 나이 들어 뼈가 약해지면, 뼈에 무리가 덜 가게 하려고 합니다. 뼈에 가해지는 부하가 줄어들면, 우리 몸은 뼈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덜 씁니다. 뼈는 더 약해지고 더 버티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작은 충격에도 부러질 만큼 약해집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뼈가 원래 하던 일인 버티기를 계속하게 해야 합니다. 일부러 뼈에 일정 수준의 부하를 주어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고 뼈가 뼛속 깊이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물체의 몸은 기막힐 정도로 가성비에 예민하니까 말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화하고 있나요, 노쇠하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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