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야기 중 널리 퍼진 것이 ‘쌍둥이 역설’입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빠른 우주선으로 여행하고 몇 년 뒤 돌아오면, 시간 지연 현상에 따라 지구에 사는 다른 쌍둥이와 다른 시간의 흐름을 겪으리라는 겁니다. 아직 인류의 기술이 시간 지연 현상을 실질적으로 체득할 만큼 빠른 우주선을 만들지 못했기에 이를 증명한 적은 없지만, 실제 지구와 지구 밖의 공간에서 각각 살아본 쌍둥이는 있습니다. 바로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쌍둥이 연구에서 주인공이던 마크와 스콧 켈리 형제입니다.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비행에 성공하고, 1969년 미국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처음으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디딘 이래 수백 명이 지상을 떠나 우주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지구를 더 오랫동안, 더 멀리 떠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탄생 이래 수십만 년 동안 지구에서만 살아온 호모사피엔스란 생물학적 종이 지구 중력권을 벗어난 곳에서 살아갈 때, 그 몸은 과연 어떤 변화를 겪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겪기 위해서지, 그곳에서 죽기 위해서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실시한 다양한 연구 중 하나로 ‘쌍둥이 연구’(Twins Study)가 있습니다. 일란성쌍둥이이자 해군 전투기 조종사이던 마크와 스콧 켈리 형제는 32살이던 1996년, 나란히 나사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됩니다. 이들은 이후 몇 번의 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2011년 마크가 은퇴한 뒤에도 스콧은 현역 우주비행사로 남았습니다. 일란성쌍둥이에 둘 다 우주비행사라니, 이런 흔치 않은 사례를 과학자들이 놓칠 리 없습니다.
서로 다른 난자와 정자가 각각 수정돼 만들어지는 이란성쌍둥이와 달리, 일란성쌍둥이는 원래 하나의 난자와 하나의 정자에서 시작한 하나의 배아가 어떤 이유로 발생 초기에 둘 혹은 그 이상으로 갈라지면서 생기는 쌍둥이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유전정보는 동일합니다. 인간의 발생과 유전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일란성쌍둥이의 추적 연구는 인류에게 오랜 물음이던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 논쟁, 즉 인간을 서로 달라지게 하는 것이 타고난 유전형질인지, 그들이 살아가며 겪는 환경의 문제인지 가늠하는 데 결정적 힌트를 얻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 마크와 스콧의 경우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우주에서 인간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비교하는 연구에 이 형제만큼 적합한 이들은 없으니까요. 나사는 2015년 3월부터 340일 동안 스콧은 지상 400㎞ 상공에 떠 있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정거장에서 머물고, 마크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지상에 머물면서 둘의 신체 상태를 비교하는 연구를 시작합니다.(‘The NASA Twins Study’, <Science> vol 364, Issue 6436, 2019)
마크가 대조군, 스콧이 실험군이 된 셈이죠. 마크가 지구에서 340회의 자전을 겪는 사이,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5440바퀴나 돌고 지상으로 내려온 스콧의 몸에는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무중력 상태에서 오랫동안 있었으니 스콧의 키가 커지고, 골밀도와 근육량이 줄어들며, 안구와 망막에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습니다. 다른 우주비행사들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변화였으니까요. 이 외에 스콧에게는 젖산 등 대사산물의 비율, 호중구 등 면역세포의 활성 비율, 혈소판 응집 등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를 끈 것은 바로 텔로미어(Telomere)의 길이 차이였습니다. 우주에 있을 때, 스콧의 세포 노화의 바로미터라는 텔로미어 길이가 지상에 있는 마크의 것보다 약 10% 더 길다는 관찰 결과가 나왔습니다.
1961년 레너드 헤이플릭은 인간에게서 유래한 세포는 아무리 이상적 조건을 갖춰 배양해도 40~60회 정도 분열한 뒤에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저절로 죽어버리는 현상을 관찰합니다. 이 현상에 그의 이름을 따 ‘헤이플릭 한계’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왜 세포에 헤이플릭 한계가 나타나는지 그 정확한 원인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확실히 밝혀진 것은 1980년대로, 엘리자베스 블랙번이 유전물질인 염색체의 양 끝단에 존재하는 텔로미어의 존재와 그 역할을 규명한 뒤였습니다.
세포는 한 번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전체를 한 세트 더 복제해 나눠 갖습니다. 그런데 이 복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염색체의 끝부분에 있는 디엔에이(DNA)가 10여 개씩 떨어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처음 한두 번은 별것 아니지만, 세포가 자꾸 분열하다보면 닳아서 떨어지는 부위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생명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잘려나가는 부위에 TTAGGG(태그)처럼, 별다른 의미가 없는 염기서열을 반복해 덧대어, 염색체에 포함된 중요한 유전정보가 잘려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이렇게 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는 부위를 텔로미어라고 하지요. 즉, 텔로미어는 세포분열에서 염색체가 지닌 유전정보가 손상되는 것을 막는 일종의 보호대이자, 책으로 비유하자면 속지를 보호하는 두꺼운 겉표지와 같은 부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표지가 두꺼워도 여러 번 반복해 문지르면 결국 닳아서 찢어지듯이,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면 텔로미어도 점점 짧아지기 마련입니다. 이 텔로미어의 길이가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생명활동을 종료하는 세포자멸(Apoptosis) 프로그램을 구동합니다. 마치 안전진단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나서서 안전하게 건물을 철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포자멸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짧아진 텔로미어입니다. 뒤이어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의 존재가 알려지고, 텔로머라아제의 활성이 수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도 알려집니다. 고급 식재료로 유명한 바닷가재는 최대 100년을 사는 장수동물로도 알려졌는데, 이들이 오래 사는 비밀이 바로 텔로머라아제에 있습니다. 바닷가재는 텔로머라아제 활성이 높아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도록 유지하며 오랫동안 노화 증상을 보이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나사의 우주 쌍둥이 실험에서 밝혀진 텔로미어의 길이 변화. 초록색이 대조군인 마크 켈리, 파란색이 실험군인 스콧 켈리의 텔로미어 길이입니다. 우주비행 중에는 확연히 실험군의 텔로미어 길이가 늘어남이 관찰됐습니다.(그림 참조)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텔로머라아제의 활성을 제거한 실험동물의 경우 급격한 노화로 자연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현상도 관찰됐습니다. 이처럼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아제는 세포분열 횟수뿐 아니라 그 세포로 이뤄진 개체의 자연수명과 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아제를 찾아내고 그 역할을 규명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블랙번과 캐럴 그라이더, 잭 쇼스택은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니 쌍둥이 우주비행사의 비교연구에서 텔로미어의 길이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이는 확실히 흥미로운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소식을 다룬 기사는 ‘장수하려면 우주에 가라’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것도 여럿 있었지요. 정말 오래 살고 싶으면 우주로 나아가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주에 있을 때는 확연히 길었던 스콧의 텔로미어 길이는, 그가 지상에 내려오자 겨우 며칠 만에 원래대로 되돌아갔습니다. 우주에서의 변화는 일시적이었던 거죠. 과학자들은 스콧의 텔로미어가 일시적으로 길어진 이유는 우주로 나가서가 아니라, 그가 우주비행을 하는 동안 따랐던 규칙적인 생활과 엄격하게 관리된 식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기존에도 엄격한 식이요법으로 열량 섭취를 3분의 1 정도 줄인 쥐에게서 텔로미어의 길이 감소가 덜 일어나고 수명도 20% 이상 늘어났음이 보고된 적이 있으며, 소식(小食)이 장수 비결 중 하나임이 널리 알려졌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텔로미어의 길이가 세포 수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텔로머라아제 활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 세포가 암세포로 흑화할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암이 발생하면 그 암세포 자체는 불멸할지 몰라도, 그 암을 가진 개체의 수명은 줄어들 것이 확실하니, 무작정 텔로미어 길이를 늘이고 텔로머라아제 활성만 높이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나사의 쌍둥이 실험에서 드러난 텔로미어의 길이 변화는 우주라는 공간에 따른 차이라기보다는, 생활 습관과 섭식 형태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우주공간에서도 적용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환경적 차이가 개체의 타고난 유전자와 상관없이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여럿 있습니다. 특히 인간에게는 자연적 환경 차이뿐 아니라 사회계층·자산의 차이 같은 조건도 수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발생·행동 유전학자인 캐스린 하든 박사는 미국의 경우만 봐도, 가장 부유한 계층은 가장 가난한 계층보다 평균 15년 이상 오래 살며, 저소득층 어린이는 8살만 돼도 노화 징후를 드러내는 후성유전학적 변이를 보인다며 이를 뒷받침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운명이지만, 그 죽음이 찾아오는 순서는 사회계층 사다리의 아래쪽부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순서는 과연 바꿀 수 없을까요? 다음 연재글에서 이것을 좀더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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