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휴면 상태나 다름없던 동문회 단체대화방에 오랜만에 메시지가 떴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갑니다. 한때 그 대화방을 채우던 소식의 대부분은 만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결혼과 출산, 둘째 아이 탄생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 생명이 생기는 것에 대한 기쁜 소식이었지요. 그러더니 몇 년 전부터는 만남보다 헤어짐에 대한 소식이 더 많이 올라옵니다.
단체대화방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역시나 부고 소식입니다. 어느새 만남보다는 이별을 더 많이 견뎌야 하는 나이가 됐나봅니다. 그러니 건강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요. 건강검진을 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건강기능성식품을 사들입니다. 다들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이 매출액 5조원 넘는 어마어마한 시장을 형성했으니까요. 홍삼이 굳건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 커플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름마저 비슷한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름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란 생명(biotic)을 위한다(pro), 즉 ‘for life’라는 뜻을 지녔고, 프리바이오틱스란 생명(biotic) 앞에(pre)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우리 몸을 위하는 것, 즉 몸속에 존재해 우리를 이롭게 하는 미생물, 즉 체내유익균을 말합니다(유산균 같은 세균뿐 아니라 효모 같은 진핵생물도 모두 포함함). 프리바이오틱스는 그 미생물의 앞에 있는 것, 즉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유산균은 프로바이오틱스, 그 유산균을 활성화하고 먹이가 되는 프락토올리고당·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 등이 프리바이오틱스죠.
사람이든 세균이든 입에 맞는 음식을 잘 먹어야 기운이 나는 법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에 프리바이오틱스를 추가하면 유익균의 활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를 처음부터 더한 신바이오틱스(Synbiotics) 제품도 등장했죠. 우리 몸에는 피부 상재균, 여성의 질 속에 사는 세균 등 다양한 유익균이 존재하지만, 대개 프로바이오틱스는 소화기관 속에 사는 장내세균을 이르는 말입니다. 결국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 성분이 든 건강기능식품은 사람들 장내에 거주하는 세균 중 유익균을 추가하고 이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어 장내에 잘 자리잡게 하는, 장내세균의 이주 및 생활 지원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인간의 장내에는 1천~1만 종의 장내세균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수와 비슷하게(약 40조) 존재합니다. 세균은 인체 세포보다 훨씬 작기에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정도는 1% 남짓이죠. 사람은 누구나 장내세균과 공생하며 살아가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임신 중 자궁 내부는 자궁경부를 점액 마개로 막아 외부에서 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무균 상태를 유지합니다. 태아는 스스로 만든 양막에 둘러싸여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성장합니다. 그러니 태아의 장내에 외부 세균이 자리잡기 어렵지요.
태아가 처음 자기 몸속에 외부 세균을 받아들이는 것은 탄생할 때입니다. 산도를 내려오는 과정에서 원래 엄마의 질 속에 살던 유산균과 만나고 이들을 최초의 장내 입주자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보다 ‘유산균 샤워’를 한 경험으로 더 튼튼하다는 속설이 생겨 자연분만을 고집하거나 그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모유에는 신생아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한 영양소뿐 아니라, 신생아의 미숙한 내분비계를 보조해줄 호르몬과 감염 위험에서 지켜줄 항체에 더해 엄마의 몸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았던 다양한 장내 유익균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를 한 신생아가 제왕절개와 조제분유를 먹은 신생아보다 장내세균의 다양성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출산문화가 형성되기도 했지요.
물론 가능하다면 자연분만을 하고 젖을 먹이는 것이 좋겠지만, 의학적 위험을 무릅쓰고 자연분만을 강제하거나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산도를 통과하지 않아도 피부 접촉이나 수유 등으로 장내세균은 충분히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신생아가 먹는 프로바이오틱스 제제가 나와 있으니 이를 보충해줘도 좋습니다. 게다가 이 차이는 아이가 자라 이유식을 먹으면서 거의 사라지니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기 몸속에 장내세균이 제대로 자리잡는 것은, 이후 아기가 살아갈 기나긴 날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아기의 출생 방법과 엄마의 장내세균 종류, 출생 초기 접촉하는 사람들의 피부 상재균에 영향받습니다. 신생아의 장내에는 통상 선택적혐기성세균(Facultative anaerobic bacteria·산소 유무와 관계없이 자라는 세균류)이 먼저 자리잡고 차차 완전혐기성세균(Obligate anaerobic bacteria·산소가 없는 곳에서 사는 세균)이 입주합니다.
체내에서 장내세균은 소화 보조와 영양소 합성, 선점 효과로 인한 유해균 침입 방지, 면역세포 자극으로 인한 면역 활성화 등의 일을 합니다. 사람의 소화효소가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는 물질도 소화해 에너지를 추가로 뽑아내고, 비타민K 등 인체에 필요하지만 자체 합성이 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 체내 균형을 맞추며, 미리 장내 점막에 뿌리내려 나중에 들어오는 유해 미생물이 장내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고, 비록 성향은 온건하나 태생적으로 외부 침입자라는 특성 탓에 면역세포의 관심을 유도해 면역계를 활성화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장내세균에 대해 인체는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과 충분한 먹거리를 보급해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지요. 그런데 이 작은 세입자들은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심지어 장내 미생물의 상태 변화가 뇌에 영향을 미쳐 식욕과 감정, 건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2015년 미국 연구진은 장내세균을 모두 없앤 무균 쥐에서 ‘행복 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줄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아내 과학저널 <셀>에 발표했습니다. 2022년 프랑스 연구진은 생쥐 실험에서 뇌의 시상하부 뉴런(신경세포)이 직접적으로 장내세균이 분비한 펩티도글리칸을 인식해 그에 따라 생체 내부 시스템을 조절한다는 것을 <사이언스>에 밝히며 장-뇌 축’(Gut-Brain Axis)의 존재에 힘을 실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환자들의 예후가 장내세균과 연관성이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됐습니다. 장내세균의 다양성이 부족하거나 각 세균 사이의 불균형이 심한 사람일수록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증상 정도가 심했고, 병이 나은 뒤에도 후유증이 오래 지속되는 롱코비드(Long Covid)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컸다고 합니다. 장내세균은 단순한 세입자나 거주자가 아니라, 인체와 다양한 관계를 맺는 조절자일 가능성이 훨씬 커진 셈이죠.
상호보완적이면서도 경쟁적인 인체와 장내세균의 안정적 공생관계는 생후 3년쯤 안정기에 도달합니다. 만 3살이 지난 아기의 장내세균 다양성은 성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각각의 장내세균 면모를 살펴보면 세균 종류와 각 세균의 조성 비율은 차이가 납니다. 어머니에게 어떤 장내세균을 물려받았는지, 이유식으로 어떤 음식을 접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달라지죠.
장내세균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하더라도 이후 식성, 호르몬 변화, 감염, 스트레스, 약물 섭취 등에 따라 그 종류와 비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노화는 장내세균의 변화를 가져오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나이 들면 장의 운동 기능이 저하되고 장 내벽의 투과성이 줄어 소화된 음식물을 제대로 밀어내거나 흡수하기 어려워집니다. 입맛이 떨어지고 치아나 위장 기능이 저하돼 식단에 변화가 생기며, 면역계 활성도 저하됩니다. 이는 장내세균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쳐 건강한 균형을 깨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기존 장내세균, 주로 유익균은 그동안 든든한 배경이 돼주던 장내 환경이 변화하면 사멸률이 높아지게 마련이고, 이 빈자리는 외부에서 들어온 유해균이 채울 가능성이 큽니다. 세계 각국에서 이뤄진 장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100살을 넘긴 초고령 노인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다양한 종류의 장내세균을 가졌고, 천연 항생물질을 만들어내는 장내세균을 가진 이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환경 조건을 충분히 갖춘 지역에서조차 평균수명이 80대를 넘지 못하는 사실에 비춰보면, 100살 이상의 장수는 개인의 영양과 건강 상태, 체질뿐 아니라 장내세균과의 기막힌 공생이라는 퍼즐 조각까지 모두 맞춰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퍼즐 조각의 바탕은 식습관입니다.
물론 개인의 장내세균 비율은 어린 시절 식습관에 크게 영향받지만 어른이 됐다고 그 비율을 전혀 바꿀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지방과 단순당의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과 섬유질을 충분히 먹는 식습관은 건강한 장내세균이 자리잡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는 건, 우리 몸뿐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작은 입주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랍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화하고 있나요, 노쇠해지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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