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생각했지만, 올해는 그 흐름의 속도가 유난히 더 빠른 듯합니다. 설날 덕담을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석이라니요. 그저 잠시 한눈팔았을 뿐인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한 해의 3분의 2를 통째로 잃어버린 듯해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기분이 어쨌든 간에 우리나라의 양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맞이했으니, 제 몫을 하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 가족을 챙기고 지인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을 건너뛸 순 없겠지요.
특히 양가 어른들을 찾아뵙는 과정에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 두 손 무겁게 선물도 장만해야 합니다. 결혼 초기만 해도 이런 날이면 과일이나 정육 등 먹거리를 주로 마련했습니다(물론 현금이 든 봉투는 기본 옵션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맛난 음식을 함께 먹는 게 명절의 의미라 여겼기 때문이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인가, 부모님 댁에 갈 때 들고 가는 선물세트 목록이 변하고 있습니다. 당뇨가 생겨서 과일을 피하시고 고지혈증과 혈압 문제로 붉은 고기를 줄여야 하신다니, 과일과 고기가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뵐 때마다 이전보다 확연히 나이 든 모습을 마주하니, 건강에 좋고 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강식품이나 기능성식품에 눈길이 갑니다. 요즘 내 체력도 예전과 다르다는 기분이 들어, 피로해소제나 영양제도 둘러보곤 하지요. 최근 SNS에서 지인이 언젠가부터 주변 사람들이 죄다 홍삼이나 자양강장제만 선물로 보내는데 자신이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느냐고 투덜대는 것을 보고는 살짝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에 나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 선물 목록에 이들을 올리게 됩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항노화’라는 단어에 눈길이 쏠리고 귀가 기울여집니다. 항노화란, 노화현상, 즉 나이와 개인이 처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생리학적 변화 현상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시행하는 일련의 예방/관리/치료 행위를 통틀어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20년 항노화 제조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증대와 가속되는 인구 고령화로 노년기의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항노화산업 시장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그 갈래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2020년을 기준으로, 국내의 항노화 제조산업 분야에 등록된 업체는 총 1962개사로, 전체 매출액은 18조2100억원에 이르며,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요. 그중 건강기능식품 관련 매출액은 2조6700억원으로 전체의 14.7%를 차지합니다. 2020년 기준으로 국내 영유아식 관련 매출액이 5800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시장입니다.
우리나라 항노화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절대 강자는 홍삼입니다. 그 밖의 목록을 살펴보면, 근래 들어 장내 유익균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시작된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이와 짝을 이루는 프리바이오틱스(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프락토올리고당)의 인기와 함께,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밀크시슬·루테인·글루코사민·오메가3 등), 그리고 전통적으로 한약재로 쓰였던 당귀·은행잎·영지버섯·동충하초 등과 다양한 식재료 70여 종(매실·홍합·다래·콩·귀리 등)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받아 팔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내세우는 항노화 기능의 효과도 피로 해소와 체력 증진, 혈압/혈당/혈중 지질 조절, 장 기능 보완, 면역력 향상, 혈행 개선, 배뇨 기능 개선, 뼈와 관절 건강 증진, 여성호르몬 기능 보조, 각종 비타민·미네랄 공급, 인지 기능 개선, 눈 건강 개선, 간 기능 개선, 항암 기능, 항염 기능, 항산화 기능 등 다양합니다. 여기서 주장하는 효과는 항노화 기능이라기보다 건강한 신체 기능과 관련 있습니다. 결국 이 건강기능식품들이 내세우는 효능에서 읽어낼 수 있는 건, 나이 들어가며 생기는 노화란 전반적으로 균형 잡혔던 신체 시스템이 이전만큼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여러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고, 이 불편함을 개선하고 보조하는 것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들어가 건강기능식품을 찾아봅니다. ‘건강기능식품’이란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하거나 가공한 식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기능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제품’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래서 건강기능식품에는 반드시 식약처에서 인정한 건강기능식품 마크, 혹은 우수건강기능식품제조 마크가 표기돼 있습니다. 민트색 동그라미에 노란색 웃는 입술 모양의 마크(그림)가 바로 그것이죠. 이 마크가 없다면 아무리 ‘건강’ 혹은 ‘기능성’이라고 강조해도 그저 일반 식품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기능성 원료의 조건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약품이 아니라, 식품에 포함될 수 있는 기능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질병 발생의 위험을 감소하거나, 생리활성 기능을 가지거나,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이죠. 식약처장이 고시한 원료 또는 성분으로 허가된 것은 2019년 기준 총 95종으로, 영양소가 28종(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필수지방산과 단백질), 기타 기능성 성분이 67종(식이섬유 15종 포함)입니다. 또한 공식적으로 고시되지는 않았지만,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고 적어도 해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별도로 인정한 성분 263종도 있습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기능성 원료를 3등급으로 나눠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 물질이면 1등급,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면 2등급, 도움을 줄 것 같으나 인체적용시험이 미흡하면 3등급으로 구분하는 분류법이 있었으나, 2016년 이후 관련법이 개정돼 이 등급이 폐지됐습니다. 기존 법에 따르면 1등급으로 인정받은 기능성 제품은 겨우 7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다 2등급 혹은 3등급이었지요. 그런데 관련법 개정 이후 등급제가 폐지되면서 1·2등급은 모두 ‘기능성’을 인정받았고, 3등급은 아예 기능성 목록에서 빠지게 됩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행 건강 기능성 인정 원료 95종과 추가 263종은 인체의 건강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성분인 셈입니다. 확실히 그렇다기보다는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적어도 나쁘지는 않다는 증명인 셈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는 것은 오랜 철학적 난제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먹는다는 행위는 생체 시스템의 유지와 작동에 필요한 물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과정입니다. 즉, 내 몸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모든 물질을 몸 안으로 넣어주는 거죠. 이때 유입 가능한 외부의 물질과 내부에서 필요한 물질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에, 온갖 물리적(저작·연동·분절 운동)이고 화학적(아밀레이스·펩신·리파아제 등 소화효소)인 방법을 동원해 외부 물질을 분자 단위로 잘게 쪼개 흡수합니다. 분자 수준으로 아주 잘게 쪼개야 나중에 다른 물질을 합성하는 데 써먹기도 좋고, 먹는 과정에서 몸으로 유입되는 세균이나 이물질이 체내로 흡수되는 것도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콜라겐이 듬뿍 든 돼지 껍데기를 아무리 먹어봤자, 피부 건강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콜라겐은 단백질이라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콜라겐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분자인 글리신·프롤린·글루타민산·알라닌 등으로 쪼개어 흡수됩니다. 물론 이들이 들어와서 우리 몸에서 다시 콜라겐 합성을 하는 데 쓰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콜라겐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미노산은 먹지 않아도 알아서 몸에서 합성됩니다. 게다가 이렇게 체내 합성되는 아미노산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정도라면, 피부 주름 정도는 걱정할 목록에 포함되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먹는다는 행위는 동물에게 생존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능이지만, 나이 들수록 먹는 것조차 힘듭니다. 입맛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며, 뭘 먹어도 예전처럼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모처럼 입맛이 돌아 조금 과식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속이 부대끼고 탈이 나며, 장에 힘이 없어 밀어내지 못하는지 내보내는 것도 시원치 않습니다.
항노화 관련 건강기능식품은 이 지점을 잘 파고듭니다. 나이 들면서 이전만큼 잘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어려운데, 몸도 예전만큼 원활히 돌아가지 않으니 뭔가 이전보다 더 좋은 성분이 들었고, 소화도 수월하며, 내 몸에 더 필요한 것이 골라서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 건강 유지와 신체 상태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건강기능식품의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지요.
‘노화 방지’라는 말은 건강기능식품의 분류 항목에서 따로 나오진 않지만, 어쨌든 건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노화를 방지하는 의미로 읽히니까요.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어디까지나 ‘식품’, 즉 먹을 것입니다. 지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약품’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건강기능식품의 미덕 역시 식품의 미덕과 같습니다. 변질하지 않았고, 오염되지 않았으며,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을 갖췄고, 맛과 향이 역하지 않고, 섭취하는 데 어렵지 않은 것 말이죠. 약효는 약에서 찾는 거지 음식이 굳이 갖춰야 할 미덕은 아닙니다. 오히려 약효가 지나치게 높은 음식은 오남용이 가능하기에,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크지요.
고민하다가 올해도 역시 부모님을 위한 선물 목록에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를 기본으로 뼈 건강과 혈행 개선에 좋다는 물질을 선택했습니다. 나와 남편을 위해서는 관절과 혈당에 좋은 것을 더하고요. 이것들이 드라마틱하게 누군가의 건강을 개선하고 노화를 방지하리라 여기는 건 아닙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좀더 건강하게 일상을 유지하기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나마 담은 거죠. 여기에 기능성 원료의 원산지와 명성보다는, 기능성 성분의 종류와 함유량을 따지는 약간의 정성을 더해서 말이죠. 모두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화하고 있나요, 노쇠하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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