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정말 그런가? 인공지능, 또는 가상현실과 사물인터넷은 내 주변의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그래서 ‘기술’과 ‘혁신’을 등치하는 일은 그 울림의 크기만큼 공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까짓 것 정말로 해보자.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데만 과학기술을 쓰지 않고 ‘생활’을 바꾸는 데 써도 되지 않겠는가.
‘리빙랩’은 이런 생각이 발현된 ‘우리 마을 실험실’이자 ‘생활공동체 운동’이다.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들이 만든 ‘플레이스랩’이 원조로 꼽힌다. 당시 MIT 교수들은 표본 아파트를 정하고, 주민들의 행동 패턴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플레이스랩을 설치했다. 주민들은 애초 관찰 ‘대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혁신의 ‘주체’로 탈바꿈한다. 리빙랩은 지역 구성원인 주민이 직접 참여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요컨대 내 손으로, 앞마당에서 혁신을 이루자는 얘기다. 정부나 기업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간망이나 정책, 장비 등을 지원하는 조력자로 참여한다. 기술은 이 과정에서 의사소통이나 문제 해결을 돕는 실핏줄로 쓰인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과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2010년부터 에너지 절약을 주제로 리빙랩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했다. 이들은 기존 와이파이망을 활용해 시민들이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으로 전력소비량을 확인하고 조절할 수 있는 ‘AMS 와이파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정부와 전문가들이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시민들은 전기 절감 효과를 누렸고, 참여 기업들은 부가 서비스를 판매하거나 운영 비용을 줄이는 이득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리빙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서울시는 2015년 10월,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아이오티(IoT) 리빙랩’을 띄웠다. 한옥마을을 사물인터넷 실험실로 개방하는 프로젝트다. 쓰레기통에 센서를 달아 서둘러 비워야 할 것을 환경미화원에게 알려주고, 관광객 대상 유휴 주차공간 공유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 7월 ‘내가 바꾸는 서울, 100일의 실험’ 리빙랩 프로젝트도 띄웠다. 대전시 ‘건너유’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비만 오면 범람하는 갑천에서의 사고를 막기 위해 주민과 개발자, 기업과 공무원이 협업해 스마트폰으로 범람 여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리빙랩은 ‘시빅해킹’(Civic Hacking)으로 확장된다. 시빅해킹은 시민을 위한 기술, ‘시빅테크’를 기반으로 한 사회 혁신 활동을 일컫는다. 정부 정책·재정을 공개하거나 쓰지 않는 물건 정보를 공유하는 ‘협력적 소비’, 공공서비스나 재화를 만들기 위한 소규모 민간자본 ‘크라우드펀딩’, 시민 기반 정치 참여나 감시 활동 등이 시빅테크의 주요 영역으로 꼽힌다.
미국 ‘코드포아메리카’가 진행한 ‘소화전 입양하기’ 프로젝트는 널리 알려진 시빅해킹 사례다. 폭설이 잦은 보스턴 지역 주민들이 지도에서 소화전 위치를 확인하고 집 앞 소화전을 직접 관리하도록 한 프로젝트다. 영국의 비정부기구(NGO) ‘오픈스펜딩’은 세금 사용처를 공개하고, ‘내 세금 어디 갔니?’ 프로젝트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시민공동체 ‘코드나무’가 고위 공직자 재산, 19대 국회의원 성적표, 지방정부 재정자립도, 안심병원 등의 오픈소스를 공개하고 시민이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리빙랩이나 시빅해킹 모두 공감대는 하나다. 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이 주도하고, 생활 현장에서 혁신을 만들고자 한다. 그 문제 해결 도구가 망치나 톱이 아니라 ‘과학기술’이라는 점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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