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법이 여성들에게 학교 문턱을 낮추자 생긴 일

미국 교육 분야 성차별 금지법 50주년 성과와 한계 <타이틀 나인>
등록 2023-12-29 22:48 수정 2024-01-05 12:27


“미국에서 그 누구도 성별을 이유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 또는 활동에서 제외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교육개정법 제9편)

영어 단어 37개로 구성된 법이 제정될 때만 해도 향후 영향은 상상도 못했을 법하다. 해당 법 9편에서 따온 <타이틀 나인>(셰리 보셔트 지음, 노시내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은 미국 교육에서 성차별을 금지한 최초의 법을 다룬다. 미국 첫 여성 노동부 장관을 임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때도, 인종차별 폐지에 앞장선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도 아니었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로 잘 알려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교육개정법에 서명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때도 <뉴욕타임스>가 교육개정법의 다른 내용을 주로 다루고 타이틀 나인은 한 문장만 할애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영향은 컸다. 여성 입학과 채용이 시작이었다. 각 교육기관에서 여학생과 여자 운동선수, 지도자 등의 스포츠 참여 기회가 열리고 예산과 지원도 늘었다. 연방기금을 받는 모든 대학이 학내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도록 한 도구도 타이틀 나인이었다. 최근에는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도 막았다. 다국적기업 나이키는 창립 50주년인 2022년 브랜드 디엔에이(DNA) 구축에 30년 전 타이틀 나인 제정이 역사적 사건이 됐다고도 발표했다.

기자인 저자는 70여 명을 100여 차례 인터뷰하고 워싱턴 국회도서관 등 각종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방문해 사료를 찾아 반세기 동안 차별과 싸운 얘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는 첫 반세기가 성공적이라 평가하면서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동안 백인, 신체 건강한 사람, 시스젠더(cisgender·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이성애자, 본토박이 등이 과도하게 혜택을 가져갔다며 앞으로 성차별과 교차하는 인종차별, 경제 장벽 등을 없애는 데 함께 나아가야 타이틀 나인이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차별금지법 제정 실패를 언급한다. 2006년 이후 국회에 최소 11건의 법안(정부안 포함)이 발의됐지만 진척은 없었다. 책은 미국의 사례로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왜 어려운지, 그럼에도 왜 필요한지, 만들어지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간접적으로 가늠하게 한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로컬 혁명

윤찬영 지음, 스탠다드북스 펴냄, 1만5천원

마을 스테이, 소상공인 생태계, 로컬 브랜딩, 빈집 되살리기, 골목상권, 로컬 투자, 로컬 미디어 등 7개 분야의 ‘로컬 혁명가 7인’ 얘기다. ‘지역 소멸’ 위기 속 이들의 방향과 대안이 담겼다. 빈집을 연이어 사면서 투기꾼으로 오해받다 신뢰를 얻은 충남 부여 박영아 세간 대표나 술 청주를 중심으로 지역 브랜드 생태계를 살리려는 전북 군산 조권능 지방 대표 등이 그들이다.


핸드오버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조용빈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1만9800원

현대 국가와 기업을 인공지능(AI)과 비교해 공존 가능성을 점친다. 인류가 인공지능에 앞서 고안한 인공물인 국가와 기업은 안전과 번영을 주는 동시에 제국주의, 자연 파괴 등 부작용도 있었다. 여기에 복제성, 긴 생명력, 개인을 넘는 권한과 책임 등에서 유사한 인공지능까지 등장했다. 인간이 국가·기업, 기술(인공지능)과 함께 공존하는 방안을 고찰한다.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

남기업 등 지음, 이상북스 펴냄, 2만원

소득·자산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오솔길’로 토지배당제를 제시한다. 토지(건물 제외)에 보유세를 부과해 세수 전액을 국민 모두에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놓은 토지이익배당금제와 같다. 책은 연간 50만원의 토지배당을 기준으로 구체적 사례와 과세 체계를 설명한다.


꼴, 좋다! 1·2권

박종서 지음, 싱긋 펴냄, 5만2천원

티뷰론, 쏘나타, 싼타페 등을 디자인한 한국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가 썼다. 큼직한 사진과 그림으로 1권에선 게다리-굴착기, 풍뎅이 등-구두코, 소금쟁이-레이싱카 등 자연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을 설명한다. 2권에선 1974년 포니와 함께 발표됐지만 사라진 포니 쿠페, 1977년 첫 국산 트럭(HD-1000)의 투박한 디자인까지 현장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