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이나 도시텃밭을 전전하다보면 ‘땅 욕심’이 생긴다. 땅에 좋은 미생물을 주거나 비닐 대신 비싼 왕겨로 멀칭(풀이 자라지 못하게 씌우는 것)할 때, 손이 많이 가지만 땅에 좋다는 작업을 할 때마다 “내 땅이었으면!” 외쳤다. 우리가 아무리 땅에 공들여봐야 내년에는 갈아엎어질 운명에 처했으니까.
그렇게 내 땅이 간절해질 때마다 열심히 농지 매물을 살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농사는 내 일상에 두고 싶으니 근처에서 농가주택과 작은 밭이 딸린 곳을 얻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침 동네 주변에 그런 집들이 남아 있다.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을 원하는 눈 높은 사람들은 아니니 하나쯤은 우리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착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인천 계양구 주변의 농지를 검색하다 작은 집 하나에 300평 조금 넘는 밭이 딸린 매물 하나를 발견했다. 밭 주변을 산책할 때마다 눈독 들인 집 중 하나였다. 대대손손 살아왔을 낡은 집이지만 집 앞에 밭이 있는 구조는 요즘 시골에서도 흔하지 않다. 너무 비싸서 살 수는 없었지만 집 앞에 텃밭이 놓인 구조와 밭 크기가 마음에 들어 산책 겸 일단 한번 가봤다.
마침 커다란 뽕나무 몇 그루만 덩그러니 놓인 밭에서 오디를 줍던 집주인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오디가 이렇게 많이 떨어졌어.” “이렇게 큰 뽕나무는 처음 봐요. 그런데 이 땅은 왜 농사를 안 짓고 계세요?” “응? 이제 힘들어. 이 옆에 매년 양파 심는 땅 알지? 거기 2천 평도 우리 땅인데 소작 주고 있지.” “그래서 집을 내놓으셨어요? 이 집이 매물로 나온 걸 봤어요.” “잠깐 내놨는데 이제는 아니야. 땅값이 점점 오르는데 더 오르겠지.”
네? 뭐라고요? 하지만 이 일대 대부분이 최근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음을 잊은 건 우리였다. 남은 땅 대부분은 군대 옆에 있거나 그린벨트로 묶여 있지만 주변 곳곳에 신도시가 들어서며 동네 사람들은 언젠가 개발되리라고 굳게 믿고, 땅이 팔리든 안 팔리든 매년 땅값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 그 뒤로도 우리 사정을 아는 이웃들이 매물이 나올 때마다 우리에게 연락했지만 비슷한 규모에 10억원이 넘지 않는 집이 없었다. 아주 먼 시골로 들어가면 밭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생산물이 많지 않은 농사를 지으니 당장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없다.
경기도 일대에는 나와 사정이 비슷한 친구 몇 명이 ‘반농반×’로 살아간다. 우리가 ‘반농’을 하는 이유는 농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농사를 짓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작물이 소중한 만큼 야생동물과 곤충, 풀도 귀한 존재라고 믿는다. 이 농사를 지을 때만큼은 즐거움을 느끼고, 우리의 작은 실천과 농사가 어쩌면 기후위기라는 상황에서 작은 역할이나마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비싼 시설을 짓고 농자재를 투입하는 대신 가진 재능으로 약간의 돈을 벌고 덜 쓰며 이 생활을 어떻게 지속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큰 농사만이 모두를 먹여살린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자신과 주변의 친구들을 먹인다. 누가 작물을 키우고 누가 먹는지 아는, 그래서 낭비하지 않고 먹으며 쓰레기를 만드는 양보다 줍고 순환하는 양이 더 많은 농사도 분명히 제 역할을 한다. 그런 우리도 평생 농사짓고 돌보는 내 땅을 가질 수 있을까. 내년 텃밭 임대료를 입금해야 하는 시점에서 친구 커플이 쓴 책의 이름을 되뇌어본다.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경남 밀양의 농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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