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살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도심을 걸을 때면 두어 번은 옆 혹은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주로 대로변에 자리한 다이소를 마주쳤을 때 그렇다. 다이소는 예전 슬로건처럼 ‘필요한 건 다 있소’를 표방하는데, 그러니 반대로 내게 무언가 항상 ‘덜 있소’라는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살 물건을 메모장에 적어 가도 비슷하다. ‘분명히 더 살 게 있을 듯한’ 생각에 이 코너, 저 코너의 매대를 살피다가 괜히 그동안 없이도 잘 살았던 칫솔꽂이나 칙칙한 사무실 책상 좀 밝혀줄까 싶은 크리스마스 시즌용 기차 장식,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유행템의 ‘저렴이 버전’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기도 한다.
“오늘은 왠지 다이소한 기분이 들어.” 트위터리안 리파부(@rifabooo)의 말이다. 그는 ‘다이소-하다’라는 기분을 명명해내고 이렇게 설명한다. “뭔가 사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으며, 돈은 쓰고 싶지만 무리해서 큰돈은 쓰고 싶지 않은 상태”라고. 이 명명에 다른 트위터리안들이 공감하며 유사한 조어로 ‘올리브영-하다’ ‘아트박스-하다’를 제시하기도 했다(흥미롭게도 다이소 근처에 올리브영이나 아트박스가 쉽게 눈에 띈다).
정말, 온갖 생활용품을 취급하며 우리 일상과 촘촘히 연루된 다이소는 이제 국민 가게를 넘어 ‘국민 기분’이 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하게 소설가 김애란은 약 20년 전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의 주인공을 통해 편의점 갈 때의 기분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그때의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 시민이 된다.”
사회학자 전상인은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오늘날 우리는 편의점에 의해 ‘소비하는 인간’(Homo Consumus)으로 길든다고 분석했다. 필요에 의해 매장을 찾는 게 아니라 매장에 의해 필요가 생긴다는 점에서다. ‘다이소 사회학’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분석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다이소에선 ‘불필요’를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다이소에 간다’라는 소설이 쓰인다면, 주인공의 기분은 이렇게 서술되지 않을까. “기죽지 않는 소비자가 된다.”
이게 바로 생활용품을 편리하게 구매한다는 공통점에도 다이소-하다가 ‘편의점-하다’ 혹은 ‘마트-하다’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다. 생필품부터 문구류, 화장품, 식품, 의류, 전자기기까지 아우르지만 가격이 3천원 이상은 좀체 넘지 않을 조무래기들이 일·이·삼열 종대를 이루는 다이소 왕국에서, 나는 그제야 무능력하거나 호구 잡힐 소비자가 아닌 ‘소비 주체’라고 안도할 수 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완벽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긴장감, 우두커니 선 채 스마트폰을 붙잡고 후기를 몇 번이고 검색해야 하는 수고는 잠시 내려두게 된다. 혹시 아는가, 연예인 한소희가 생일 때 착용해서 화제가 된 단돈 1천원짜리 ‘블링블링~프린세스 목걸이&귀걸이 세트’처럼 몇 배고 가치 있어 보일 물건을 건지게 될지도. 샀다가 아니면 말고(이상하게 편의점이나 마트에선 아득바득 그램(g)당 가격을 따지고 할인 쿠폰까지 살뜰히 활용하며 몇천원 차이를 아쉬워하는데, 다이소에서는 ‘그쯤이야’ 싶어진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필자의 일상 속 중독기를 소개한 ‘청춘의 겨울’에 이어 지금 여기의 문화를 분석하는 ‘청춘의 봄비’를 시작합니다.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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