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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인종주의’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요

정회옥 교수 <한 번은 불러보았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 <말을 부수는 말>
등록 2022-10-11 08:36 수정 2022-10-12 23:48

‘흑인들은 동양인보다도 미련하고 흰 인종보다는 매우 천한지라.’ 1897년 6월24일 <독립신문>에 실린 사설의 일부다. 흑인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 서양의 차별적인 시선이 국내 언론 기사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났다. 지금의 한국은 어떨까.

‘흑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 단어는 얼핏 흑인에게 친근감을 드러내는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번은 불러보았다>(위즈덤하우스 펴냄)의 저자인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흑형’이 흑인을 지칭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흑인을 독립된 개인이자 인간으로 보는 대신 ‘운동 잘하는 집단’이나 ‘음악적 재능이 있는 집단’ 등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다. 단적으로 ‘황형’ ‘백형’이라는 단어가 없지 않나. ‘흑형’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혐오표현이라고 적시했다.

저자는 “한국인에게는 인종 콤플렉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종이 대화 주제로 나오는 것을 꺼리는 동시에 내심 사람들을 인종적으로 위계화하는 것, ‘한국식 인종주의’다.

‘흑형’처럼 우리 사회에 인종차별이 여전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권력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도 있다. 흔히 예술가의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줄 때 ‘창작의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반면 ‘노동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낯설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말을 부수는 말>(한겨레출판 펴냄)에서 “창작과 노동이 사회에서 가지는 위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통의 표현이 때로 그 고통을 권력으로 바꾸”는 지점이다.

책은 고통부터 아름다움까지 21가지 화두를 통해 ‘권력의 말’과 이에 맞서는 ‘저항의 말’을 분석한다. 이를테면 ‘젠더 갈등’이라는 표현은 성차별을 은폐하는 권력의 언어다. 마땅히 ‘성차별’이라고 명명해야 할 상황에서 등장한 ‘젠더 갈등’이라는 언어는 억압과 차별이라는 개념을 갈등이나 갈라치기로 표현해 오직 양성의 대립 구도만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저자의 바람대로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는 사회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항의 언어’는 정확한 언어에 가깝다.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권력이 정해준 언어에 의구심을 품는다는 것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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