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니까 네가 해야지.” 3년 만에 의식불명 상태인 아빠를 만난 성희는 친척들의 이 한마디에 직장과 병원, 주민센터를 오가며 아빠를 돌보는 ‘보호자’가 됐다. 푸른은 ‘머리가 고장난’ 할머니를 혼자 돌봤다. 아빠와 큰아빠는 ‘남성’이라는 방패막이를 내세워 푸른에게 할머니를 떠넘겼고 “네가 효녀다” “아주 어른스럽네” 같은 ‘말’만 했다.
성희와 푸른의 돌봄이 과연 자식 된 도리일까. 우리는 이들을 ‘효녀’라고 칭찬하면 되는 걸까. 성희와 푸른은 ‘영 케어러’(Young Carer)다. 영 케어러는 만성적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 문제, 알코올이나 약물 의존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18살 미만의 아동이나 젊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영 케어러로서 자신의 삶을 기록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펴냈던 조기현 작가가 <새파란 돌봄>(이매진 펴냄)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영 케어러 7명을 만났다. 이 책에서는 돌봄의 사회적 의미를 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한발 더 나아간다. 영 케어러 7명이 돌봄을 시작한 계기는 가족의 뇌출혈, 인지 저하, 조현병, 알코올의존, 암 등 각각 다르다. 또 가족 구성 형태도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4인 핵가족까지 다양하며, 경제적 수준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돌봄이 시작된 뒤 삶의 위기에 다다른 점은 똑같았다.
영 케어러는 이 사회에서 비생산적으로 여기는 일, 아픈 가족 돌보기를 한다. 책은 오해되는 맥락을 다시 생각할 것을 질문 형태로 제시한다. 영 케어러의 돌봄은 생산성을 빼앗기는 손실일까, 이들을 비생산적이라고 저평가한 맥락을 반성해야 할까?
“병무청이 입영 대상자를 발굴하듯 병원도 장기적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찾고 대응하는 인력과 시스템을 따로 갖추면 좋겠어요. 환자에게 어떤 돌봄이 필요한지 관리 방식을 기획하고 집이나 요양원 등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반려 할머니’를 돌본 경훈은 국가의 돌봄 책임을 강화할 돌봄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훈의 말처럼 책에는 가족과 돌봄, 국가의 관계를 바꿀 몇 가지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비공식 돌봄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방식, 가족 구성권과 돌봄 할 자유의 관계, 누구나 돌봄을 제공하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 정부가 최종 고용자가 되는 일자리 보장제를 훑으면서 일과 삶, 돌봄과 노동, 돌봄 제공자와 돌봄 수혜자가 함께하는 새로운 돌봄 사회를 상상하자고 이야기한다.
‘새파란 돌봄’이란 제목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매우 젊다는 의미의 ‘새파랗다’와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새로운 파란’이다. 일곱 사람의 이야기가 단지 영 케어러라는 사회적 약자의 가시화에만 머물지 않길 바라며 지은 제목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돌봄의 새 물결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송병건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2만2천원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이 닥친 순간 인류는 어떻게 위기를 모면했을까? 재난 이후 인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2천 년 동안 인류가 겪어온 화산 폭발, 지진, 감염병, 산업재해, 생태계 파괴, 이상기후 등 각종 재난의 역사를 살펴보고 재난 공포 속에서도 생존의 답을 찾았던 인간의 분투를 이야기한다.
소라야 시멀리 지음, 류기일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9500원
여성의 분노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그것을 존중하지 않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 전 생애의 영역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부당한 현실을 분석하고, 그로 인한 분노를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이용할 권리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성은 분노할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분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박래군 지음, 클 펴냄, 2만원
역사적 상처가 된 장소들을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찾아가 인권의 시각으로 정리한 답사기다. 주로 현지인도 잘 모르는 곳, 아예 길이 없는 곳에 남겨진 인권 현장을 탐사했다.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직접 말을 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 책 전반에 배어 있는 절실한 메시지다.
윌 버킹엄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1만7천원
고립과 두려움을 넘어 연대와 신뢰감을 되살릴 수 있는가? 다름 앞에서 삶을 열어젖힐 때의 즐거움과 가능성을 어떻게 되찾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문학과 철학, 인류학과 역사학을 가로지른 지적 탐사 기록이다. 철학자이자 여행자인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환대’의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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