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남은 이들의 삶을 담은 ‘극장판’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공장이 떠난 도시’ 군산, 그 후 2년을 기록한 <실직도시>
등록 2021-12-30 06:53 수정 2021-12-31 02:23

2019년 김성우(가명)는 48평형 아파트 청소를 하고 있었다. 청소업체를 차렸다. 유리창이 뽀드득거려도 그의 입에서는 “마음에 안 들어”가 새어나왔다. 부품 하나하나를 실수 없이 조립하는 현대 세계의 가장 정밀한 제작 현장을 떠난 뒤 무엇도 마음에 들 리 없을 터. 그는 1년 전까지도 한국지엠(GM) 군산 공장의 관리직이었다.

2017년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되고, 2018년 5월 한국지엠 쉐보레 공장이 폐쇄되면서 협력업체까지 1만5천 개의 일자리가 군산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공장’이 빠져나간 도시는 빈 공간도 거대하다. “와, 이건 무슨 영화 같은 스펙터클인 거예요?” 빈 공장을 둘러보던 기자는 이렇게 놀란다. <한겨레21> 방준호 기자는 2019년 5월 공장이 떠난 거대한 빈 공간으로 6주간의 출장을 떠났다. 이후 2019년 ‘공장이 떠난 도시’로 <한겨레21> 표지이야기를 게재했다. <실직도시>(부키 펴냄)는 기자가 김성우를 포함해 그때 만난 30명의 이후 2년간 안부를 묻고, 개인적인 경험과 한국 사회·경제적 맥락을 부기해 묶은 책이다.

표지이야기 기사가 지엠공장이 폐쇄된 ‘그날’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합집산을 기록했다면, 책에서는 ‘인간’이 더 담긴다. 얄궂게도 공장이 떠난 도시인 군산의 사람들이 토박이라서다. 공장이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남았다. 기자가 만난 사람 중에서도 대부분이 애초 군산 사람이었고 주요 인물 중 경남 창원 공장으로 간 고현창 외에는 군산을 떠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니 기자는 그가 군산을 방문한 미끼가 됐던 ‘실직’이 사람을 가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군산을 ‘공업도시’라고 불렀던 것 역시 토박이들의 삶보다 길지 않았다. 1996년 군산에 자동차공장을 세운 대우는 2000년 부도 처리됐고, 그 뒤 2002년에 들어온 지엠공장은 2018년 철수했다. 2010년 공식 준공돼 2017년 폐쇄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역사도 짧긴 마찬가지다. “지역이 대기업 생산기지만 가지고 성장하는 모델은 10년짜리라고 봐요.”(김현철 군산대 교수)

그러니 <한겨레21> 표지이야기가 ‘드라마’라면, 대공장이 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여주는 책의 부기는 ‘극장판’ 비슷하다. 군산에서는 전기자동차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한 ‘군산형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전기차 기업 명신의 공장이 지엠공장 자리에 들어섰다. 그리고 김성우는 전기차 공장에 6개월짜리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사료공장의 정규직 제안을 거절하고 “당연하다는 듯” 선택한 자리였다. 표지이야기의 ‘기업드라마’ 파트를 담당하던 이정권 전 지엠자동차 협력업체 이사는 또다시 도전 중이다. 그들은 “내 얘긴데 짠하다”(김성우), “더 열심히 해보겠다”(백일성 군산시청 공무원), “살아남아보겠다”(이정권 이사)고 ‘극장판’에서 말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하빌리스 펴냄, 1만3천원

임신 5주차이지만 임신한 것은 나흘 전이었다. 미혼 직장 여성으로서 잡무와 상사 성희롱을 견디던 시바타는, 담배꽁초가 든 커피잔을 치우려다 임신했다고 거짓말한다. 일찍 퇴근하고 야근하지 않게 되면서 생활은 윤택해져가는데…. 다자이 오사무 상 수상작.

#젠더 소설

한강 등 지음, 김지은·이광호 엮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4천원

1934년 백신애의 ‘적빈’부터 2007년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까지 여성적인 글쓰기를 수행한 문제적 작품 7편을 모았다. 글마다 주제 해설(포스트잇)과 질문(생각의 타래)을 넣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주제별로 시와 소설을 모으는 ‘해시태그’ 문학선의 1차분 주제는 #젠더, #생태다.

글래시스 로드

한지선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2만원

조선시대에도 안경은 널리 유통됐다. 안경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처음 제작된 것으로 임진왜란 무렵 조선으로 전파됐다. 조선 땅에서 제조된 적 없는 안경은 유라시아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중요 교역 물품 중 하나였다. 동서양 문화 교류의 길로 실크로드 외 인도양을 거치는 길에 주목한다.

포퓰리즘 문화정치

하승우 등 지음, 문화과학사 펴냄, 1만8천원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등 전세계의 최근 정치사적 ‘사건’은 ‘포퓰리즘’이라는 키워드로 관통할 수 있다. 촛불집회, 페미 논란, 혐중, 이대남 등도 호출할 수 있다. 하승우는 현재 포퓰리즘 이외 정치적 변화를 이끌 아래로부터의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화과학 2021 겨울호.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