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바렛·메리 맥킨토시 지음, <반사회적 가족>, 김혜경·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118쪽, 2019년
어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어른들의 놀림이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텔레비전에서 본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엄마, 통닭을 사 들고 퇴근하는 아빠, 친절한 언니 오빠들이 오순도순 사는 다정한 집을 꿈꿨다. 남들은 안 그런데 왜 우리 집만 추레하고 시끄러운지 속상하고 슬펐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른 집도 별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다들 비슷하다니 위로가 되면서도 씁쓸했다. ‘가족이란 게 다 그렇지’ 하고 즐거운 나의 집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렇게 가족의 환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이 따스하고 편안한 안식처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해서 가족의 통념, 가족이란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막내-딸 역할에 넌더리를 냈으면서도 기꺼이 아내-며느리 되기를 택했고, 이상적인 가족은 없는 줄 알면서도 TV에 나오는 잉꼬부부, 스위트홈을 질투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착한 딸, 참한 아내-며느리가 되려 애썼고 그러지 못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
영국의 사회이론가 미셸 바렛과 메리 맥킨토시가 쓴 <반사회적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자괴감에 시달리며 나와 가족을 원망했을 것이다. 1982년 처음 출간돼 여섯 차례나 재간행되며 가족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두 저자는 ‘가족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 제도’라고 천명한다. 혹자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같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제도를 싸잡아 반사회적이라 할 수 있냐고 분개하리라. 가족을 부정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의 매력에 주목한다. 이상적 가족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에 기대는 나 같은 사람을 비웃는 대신, 그건 가족이 어디서도 얻기 힘든 “정서적·경험적 만족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가족에 부여하는 물질적·이데올로기적 특권을 고려하면 가족에 투자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도 말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냐? 문제는 다른 투자처가 없다는 것이다. 주식은 수백 수천의 선택지가 있지만, 가족을 유일한 보호처로 삼는 이 사회의 선택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남(아버지-생계부양자)과 여(어머니-양육담당자)의 성별 분업과 혈연에 기초한 가족을 ‘자연적·평균적인 것’으로 절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가족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달리 갈 데가 없다.
저자들에 따르면, 가족은 돌봄의 주된 행위자지만 가족이 돌봄을 독점하면서 다른 형태의 돌봄을 수행하기는 어려워졌고, 가족은 공유의 단위지만 그들만의 공유를 주장하면서 다른 관계는 돈만이 목적인 관계가 되었다. 또한 가족 간 친밀성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바깥세상은 차가운 것, 친구와 이웃은 믿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외로움과 불안에 잠 못 들게 되었으니 이래도 가족이 반사회적 제도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여기서 벗어날 길은 새로운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애정·안정감·친밀성·양육·돌봄 등 가족만이 제공한다고 여겼던 역할과 감정을 다른 장소와 관계에서 얻고 있다. 이런 장소, 이런 관계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편안하고 사회는 더 안전할 것이다. 가족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래, 5월 한 달만 하자.
김이경 작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건강검진에선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건강검진에선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28279211_20251225500964.jpg)
건강검진에선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믿고 샀는데 수도꼭지 ‘펑’…쿠팡 책임 없다는 ‘판매자로켓’에 소비자 끙끙

김병기, 비위 폭로에 ‘적반하장’ 맞대응…당내 “원내대표 영이 서겠나”

특검, ‘김건희 금품 사건’ 일괄 기소 방침…‘검찰 무혐의’ 디올백 포함

홍준표, 통일교 특검 두고 “국힘 정당 해산 사유 하나 추가될 뿐”

김병기, ‘보라매병원 진료 특혜’ 정황까지 나와도 반성커녕 제보자 역공

미국 서부에 ‘대기천’ 폭풍 강타…LA 주민 6백만명 대피령

12월 26일 한겨레 그림판
![이 대통령 지지율 59%…민주 41%, 국힘 20% [NBS] 이 대통령 지지율 59%…민주 41%, 국힘 20% [NBS]](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11602293_20251225500883.jpg)
이 대통령 지지율 59%…민주 41%, 국힘 20% [NBS]

한동훈, ‘한때 친한’ 장동혁에 “함께 싸우고 지키자”…반응은 ‘썰렁’








![[여자의 문장] 오늘은 남은 날들의 첫날](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1226/53_16089104864529_3816089104598297.jpg)
![[여자의 문장] 지금 내 옆에 한 역사가 있구나](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1205/53_16071542872292_5316071542603478.jpg)
![[여자의 문장] 긴즈버그가 살아 있다면](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1107/53_16046788066306_4016046787948322.jpg)
![[여자의 문장] 이이효재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1016/53_16028376100073_3316028375771239.jpg)
![[여자의 문장] ‘말해야 알지’에서 ‘말하면 뭐 해’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0918/53_16004060688722_7416004050542492.jpg)
![[여자의 문장] 온몸이 담덩어리였던 여자](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0831/53_15988548501725_9015988548343815.jpg)
![[여자의 문장] 끝까지 사는 것, 내 의무이고 책임](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0/0724/53_15955930226408_18159559299991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