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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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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문장은 많다

다 해야 500쪽인 나혜석의 작품을 10년에 걸쳐 읽고 깨달은 것
등록 2021-07-08 07:08 수정 2021-07-10 07:07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우리 자손들을 무엇을 주어 살리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다행히 우리 조선 여자 중에 누구라도 가치 있는 욕을 먹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안심이오.
-나혜석, ‘잡감(雜感)’(1917), <경희(외)-범우비평판 한국문학36>, 이상경 책임편집, 372쪽, 2006년

‘여자의 문장’에 나혜석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한국 역사에서 스스로 여성임을 천명하고 여성으로서 여성에 대해 여성을 위해 글을 쓴 첫째가는 이이므로. 그걸 알면서도 이 문제적 인간에 대해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 지금껏 미뤄왔다.

그에 대해선 일찍부터 들었다. 소문 속 그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그림이며 글이며 사랑이며 제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한 자유주의자, 분방한 행보로 남의 입길에 오르내리다 행려병자로 눈감은 기구한 여자였고, 나는 그런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우연히 ‘모(母)된 감상기’를 읽고서였다. 첫아이를 낳고 1년 뒤 쓴 글에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과 두려움, “오장이 쏟아지는 듯”한 출산의 아픔, 잠 한숨 못 자는 육아의 괴로움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할 일이 많은데 임신해서 “너무나 억울하다”고 했고, 한시도 맘 편히 잘 수 없게 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까지 표현했다. 출산과 육아, 모성에 관해서는 한결같이 기리고 상찬하는 말만 즐비한 세상에서 이미 100년 전에 한 어머니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놀랍고 통쾌했다.

그날로 작정하고 나혜석의 글을 읽었다. 1918년 내놓은 단편 ‘경희’는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소설가’ 나혜석의 탄탄한 필력을 확인케 했고, 수십 편의 평론과 수필은 봉건적 가부장제에 맞서 자기를 실현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여성 지식인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그의 글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혼외정사와 이혼의 전말을 고스란히 밝힌 ‘이혼고백장’,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라고 선언한 ‘신생활에 들면서’ 같은 글을 읽을 때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난감함에 책장을 덮곤 했다. 다 해야 500쪽짜리 책 한 권인 그의 글을 읽는 데 근 10년이 걸린 까닭이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느낀 불편함이 그의 파격적 행보나 과감한 솔직함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똬리를 튼 질기고 오랜 가부장적 사고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제 다시 읽는 나혜석에게서 나는 내가 일찍이 배우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발견한다. “임신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며 그리 편한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남성 지식인에게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체하는 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다고 일갈한 것이 그렇고, 사랑은 육체가 아닌 영혼의 결합이라는 모윤숙을 비판하며 영육은 하나요 이성과 육체를 구분하는 것은 관념론에 불과하다 한 것이 그렇고, 남자가 벌어오는 것만 인정하고 여성의 가사는 무시하는 성별분업 사회가 잘못이라 주장한 것이 그렇다.

스물한 살 때 그는 가치 있는 욕을 먹는다면 오히려 다행이라며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예상대로 그는 욕먹고 망신당하고 스러졌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를 욕하던 가치 없는 문장은 잊혔으나 그의 문장은 눈 밝은 후손에게 다시 읽히고 있다. 진정 어린 문장의 힘이다.

그동안 귀한 지면에서 여자의 문장들로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읽을 문장은 많고 싸울 상대도 많고 사랑할 이는 더더욱 많다. 부디 지치지 말기를!

김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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