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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여성해방을 바란 걸까

<제2의 성>에서 전망한 미래보다 빠른 페미니즘의 성장, 그도 흐뭇해하리라
등록 2021-02-13 15:42 수정 2021-02-17 23:46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은 인간적 존재들을 구별하는 어떠한 특이성보다도 중요하다. 우월성은 결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어떤 계층을 열등한 상태로 놔둔다면 그 계층은 그 상태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이 순환을 깨뜨릴 수 있다. 흑인들에게 투표를 시키면 그들도 점차 투표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책임을 지우면 여자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제2의 성 II>,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922쪽, 2017년

기왕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으니 미뤘던 고전을 읽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년).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인용만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소박한 의무감이었다. 거의 1천 쪽에 이르는 분량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예전에 이보다 더 두꺼운 보부아르 만년의 저작 <노년>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일단 시작하면 쉬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여성의 상태를 어찌나 신랄하게 묘사하는지 보기가 힘들다. 정말 보부아르가 여성해방을 바라고 믿는가 의심이 들 정도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관점에서 남성은 자아·주체고 여성은 타자·객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 노력하며 이런 자유로운 행위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타자인 여성은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남성 사회가 만든 여자라는 이미지와 역할로 살 뿐이다. 이것이 유사 이래 여성의 삶이고 운명이었다. 여성은 왜 이런 운명에 처해졌는가?

생물학은 여성의 육체적 조건 때문이라지만, 보부아르는 사회는 종(種)이 아니며 인간은 자기를 초월해가는 존재이므로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비록 여성의 육체가 남성에 비해 종에 예속됐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성의 타자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남근 결여에서 원인을 찾고 여성의 남근 선망을 주장하는 정신분석학에 대해선, 여성은 남근이 아니라 남근 소유자가 가진 특권을 선망하며, “남근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이 없어서 타자”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유물사관은 여성 억압을 역사적 산물로 본다는 점에선 진일보했으나, 이 또한 여성 억압에는 경제 외에 존재론적 이유가 있음을 간과하며 사유재산을 폐지해도 여성해방은 오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는 역사를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해 남성 우위를 설명한다. 여성의 출산과 달리 남성의 사냥은 존재를 위해 자신을 거는 의지적 행위로써 인간을 인간이게 하며, 이로부터 “인간의 우월성은 낳는 성이 아니라 죽이는 성에 부여”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여성의 타자성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세대로 이어지고 여성에게 내면화된다고 본다. 하지만 여성도 인간으로서 자기 초월의 의지를 갖는데, 보부아르는 이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일,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출산이라는 생리적 숙명을 넘어 스스로 기획하는 노동을 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자유와 인간적 초월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보부아르는 미래의 자유로운 여성을 전망하는데 솔직히 나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고, 여성의 육체에서 숙명적 수동성만을 읽고, 모성과 돌봄의 가치를 부정하는 그에게서 페미니즘의 미래를 읽지는 못했다. 책이 나온 지 불과 70여 년 만에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건 그만큼 여성과 페미니즘이 빠르게 성장했다는 증거이니, 어쩌면 보부아르도 흐뭇해하리라.

김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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