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멍이 든 채 떠날 테지만
이것이 네게 시를 주리라.
-이르사 데일리워드의 ‘시’ 부분, <뼈>,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2019
경자년은 지독히 힘들었다. 정초부터 병이 나고 얼굴이 깨지고 구설에 시달리더니 1년 내내 갖은 일이 이어졌다. 코로나19로 보고픈 사람은 볼 수 없는데 왜 듣고 싶지 않은 말,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은 거리두기가 안 되는지…. 어느 때보다 사람의 다스한 위로가 간절한 시간, 한 문장을 만났다.
“시련을 감내하라, 그게 너의/ 천부인권이니까./ 너 자신과 싸움을 벌여라. 나쁜/ 싸움을 하라.”(‘그들이 묻거든’ 부분)
괜찮아라는 말보다 훨씬 위로가 됐다. 머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가슴 저 밑바닥, 뼛속 깊이에서 새어나온 신음 같은 계명이 자기 연민에 빠져들던 나를 깨웠다. 투정 부리지 마, 제대로 살아. 다정한 충고를 건넨 이는 젊은 흑인-여성-퀴어-시인 이르사 데일리워드. 근사하게 편집된 이미지들이 각축하는 인스타그램에 단지 텍스트를, 그것도 “이해하려면 이십 년이 걸리고 간이 망가지는 것들”을 쓴 텍스트를 올려서 15만 명의 공감을 끌어낸 이였다. 인스타그램이 그런 공간이었나 잠깐 놀라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아름다움이 주목받는 게 인스타그램이라면 그의 언어는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우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울지 마/ 좀 있으면 너도 좋아할걸”이라고 말한/ ‘하나’로부터.// (…) 몸을 내주는 건/ 힘든 일인데/ 너는 정말 잘한다고 말하는 ‘다섯’”(‘뼈’ 부분)과 같은 문장이 어떻게 아름답냐고. 더구나 그것이 시인의 ‘뼈’에 새겨진 ‘끔찍한’ 자기 이야기라면, 그런 문장과 그걸 사는 삶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름다움이다, 예쁘건 예쁘지 않건.”
처음 읽었을 때 이 문장은 내게 절망이었다. 왜냐면 이르사 데일리워드를 읽으며 비로소 나는 왜 내 언어가 아름다움에 이를 수 없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통절한 진실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의 시를 읽으며, 나는 내가 진실하지 않다는 것,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는 것, 제대로 살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살지도 당연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울고 싶은 진실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뜨기 싫은 아침이 지치지도 않고 이어질 때, 나를 이불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다시금 이르사 데일리워드의 문장이었다.
“기도로 해를 끌어내리며/ 나중을 기하고 있다면,/ 그 빌어먹을 침대에서 나와라.// (…) 여기서 네 복무기간을/ 채워라/ 형기를 채워라.// (…) 보라, 그들이 네 발목을 잡은 적은 없다./ 너였다, 너뿐이었다.”(‘정신건강’)
우울과 절망의 삽질을 날려버리는 준엄한 처방이 나를 깨웠다. 내 게으름은 변명의 여지가 없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똑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작. 이 하루가 저물 때 내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거기 무슨 희망이 있느냐 묻고 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마침내’ 찾아낸 문장을 읽어보라.
“오늘은 남은 날들의/ 첫날이다./ 물론 또다른 첫날들이/ 오겠지만/ 꼭 이런 날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단퀴에스’(마침내))
새날을 시작하는 데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김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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