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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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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영수증] 기로에 선 ‘6천원 영화관’

남해 유일한 1개관짜리 작은 영화관이 문 닫을 수도 있다는데
등록 2020-07-25 21:21 수정 2020-07-30 09:36
재개관이 불투명해진 남해 유일의 영화관 보물섬 시네마.

재개관이 불투명해진 남해 유일의 영화관 보물섬 시네마.

지난 일요일 저녁, 주말 동안 서울에 다녀온 동네 친구가 영화관에서 보고 온 최신 영화를 추천했다. 그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마침 TV에서 우리 지역 소식이 흘러나왔다. 코로나19로 2월부터 임시 휴업 중인 경남 남해군의 유일한 영화관 ‘보물섬 시네마’의 재개관이 불투명해졌다는 보도였다. 운영 업체 ‘작은 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영이 악화해 결국 폐업했기 때문이다. 다른 군 단위 지역 작은 영화관 역시 운영 위기라는 뉴스도 덧붙였다.

우리 부부도 보물섬 시네마를 몇 차례 찾은 적이 있다. 남해에 이주하고 두 달이 지난 2019년 10월 영화 <조커>를 보려고 처음 읍내 작은 영화관을 방문했는데, 깜짝 놀랐다. 티켓 한 장 가격이 6천원이었다. 둘이서 영화 한 편을 즐기고 팝콘과 음료 세트까지 사 먹어도, 주말 영화 티켓 가격이 1인 1만2천원인 도시의 멀티플렉스보다 훨씬 저렴하다. 도시에서는 우리 부부가 주말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오가는 길에 외식까지 하면 외출 한 번에 5만원 이상 쓰니, 금전적 부담이 돼 영화관을 즐겨 찾지 않았다. 그런데 시골에 와서 오히려 영화관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게 됐다.

영화 티켓 가격을 알고 나니, 같은 동네에 사는 ‘영화광’ 친구에 대한 오해가 풀어졌다. 도시의 여느 영화관처럼, 티켓 가격이 비쌀 것이라고 여겨 영화관에 함께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선뜻 응하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읍내 영화관에 다녀오는 친구를 보고서 우리 부부는 그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한참 넉넉하다고만 생각했다. 읍내 영화관을 직접 방문해보고 나서야, 친구가 부담 없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됐다. 친구 역시 우리 부부가 영화관 가길 꺼렸던 이유를 알고서 서로 한바탕 웃어넘겼다.

시골의 작은 영화관임에도 도시의 영화관에 비해 모자라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비록 상영관은 1관이 유일하지만, 212개 좌석과 대형 스크린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늘 붐비는 도심 속 영화관과 달리, 여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우리 부부가 영화관을 찾을 때는 늘 10명 남짓의 관객만 있어 조용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예매해야 하거나, 인기 영화라고 매진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보통 영화관과는 다른 독특한 풍경과 마주치는 즐거움도 있다. 영화관이 있는 건물은 남해문화센터이기도 해서, 영화관에 갔다가 우연히 지역주민이 손수 만든 닥종이 인형 전시를 보거나, 공연에 열중하는 꼬마 합창단을 만나기도 했다.

2019년 가을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관람한 이후, 꽤 오랫동안 읍내 영화관을 찾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반년째 임시 휴업 중인 작은 영화관은 재개관마저 불투명해졌다. 동네 친구가 꼭 보라고 추천해준 최신 영화를 보려면, 꼬박 1시간은 운전해서 진주나 사천 등 인근 도시에 나가야 한다. 남해에선 전시나 공연을 즐길 기회가 부족한데, 영화관 나들이마저 어렵게 됐으니 안타깝다. 지난해 우리 부부가 보물섬 시네마에서 남겼던 영수증이 남해 영화관에서의 마지막 영수증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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