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적인 책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시시한 책들도 얼마든지 고를 수 있으며, 결국에는 거기서도 뭔가를 배우게 된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봄날의책, 7쪽, 2018년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좋아해서 그가 쓰거나 말한 것은 다 챙겨 읽었다. 두 권의 시집, 노벨상 수상 연설문 그리고 인터뷰집까지. 하지만 그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안 읽었을 것이다. 예전에 이 책을 선물받았는데 몇 쪽 훑어보다 그냥 덮었다. 소개하는 책들은 낯설고 내용 또한 내가 아는 서평과는 너무 달라서 뜨악했다. 역시 시인은 시를 써야 해,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도서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집에 있는 묵은 책들을 들춰보지 않았다면, 내가 뭘 놓쳤는지 끝내 몰랐으리라.
<읽거나 말거나>는 쉼보르스카가 1967년부터 2002년까지 잡지와 신문에 연재한 서평 562편 중 137편을 모은 책이다. 연재한 매체는 몇 번 바뀌었지만 제목은 한결같이 ‘비(非)필독도서’였다. 꼭 읽으라고 권하는 대개의 서평과 달리, 그는 <아파트 도배하기> <포옹 소백과> <스리 테너의 사생활> 등등 읽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온갖 책들에 대해 짧은 독후감을 썼다. 심지어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에 대해서도 썼다. “터무니없는 졸저임에도 불멸을 지속하는 책”이 많은 데 반해 “달력은 우리보다 더 오래 존재를 지속하려 들지 않는 유일한 책”이라고.
읽지 않아도 괜찮은 책에 대해서만 쓴 건 아니다. 개중에는 많은 지식인이 필독서로 꼽는 <서로마제국의 멸망> <총, 균, 쇠> <사랑의 기술> 같은 고전도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역설하거나 꼭 읽으라고 추천하는 법은 없다. 어떤 책을 다루든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고 느끼고 평한다.
그에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 읽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수많은 책이 있고, 그중 마음에 드는 책과 안 드는 책이 있을 뿐. 그는 이 책들에 대해 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태도로 쓴다. 나도 이러고 싶으나, 어려서부터 필독 권장 추천 도서에 길들여진 탓에 번번이 세상 눈치를 보고 만다. 그래서 궁금하지도 않은데 읽거나, 읽지 못한 걸 창피해하며 교만과 수치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 세상에 만연한 맨스플레인에서 초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서평은 솔직하다. 그는 좋으면 좋다, 형편없으면 형편없다고 쓴다. 뭐 이런 뻔한 얘길 하는 책을 굳이 번역까지 하냐고 혀를 차고, 이 책을 사느니 차라리 감자 요리법 책을 사는 게 낫다고 쓴다. 요즘 대세인 주례사 비평과는 전혀 다르다. 더욱 놀라운 건, 좋다고 숭배하지도 않고 형편없다고 무시하지도 않는 태도다. 신랄하게 혹평하는 이들은 종종 있다. 그들은 대개 분통을 터뜨린다. 쉼보르스카는 아니다. 한심한 책을 쓰거나 만들었단 이유로 한심한 인간이라고 비웃지 않는다. 인간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고, 비분강개하기보다 가볍게 웃어넘기는 쪽이 삶에 도움이 됨을 알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보다 찰스 디킨스가 좋다고 했던 그는 뭉뚱그린 인류보다 낱낱의 사람을 좋아하고, 유머를 사랑한다. 그러니 이 책이 자서전·회고록·평전·일기·편지 같은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하고, 읽는 내내 미소와 폭소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긴급재난 문자에 한숨짓던 이즈음, 이 책 덕분에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 혹시 당신도 웃고 싶다면 159쪽의 <모두를 위한 하타 요가>를 추천한다. 아뿔싸, 또 추천을!
김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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