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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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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의 탈을 쓴 역사부정론의 민낯

강성현 교수의 <탈진실의 시대, 역사 부정을 묻는다>
등록 2020-02-29 15:59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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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다’ 등의 주장을 담아 논란을 부른 책 를 일부러 읽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은 관심을 주지 않아야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푸른역사 펴냄)를 쓴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내가 취한 무시 전략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진단이라고 분석한다. ‘반일종족주의 현상을 간과하면 할수록, 관심을 꺼야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다가오는 현실은 어쩌면 그 반대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 반일종족주의 주장을 받드는 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반일-공산주의-매국’에 맞서 자신들이 ‘친일-자유주의-애국’을 한다고 믿고, 서울 광화문 등에 모여 세를 불리며 과시하고 있다.

이 책은 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런데 기존에 나왔던 비판과는 다르다. 이영훈‘들’이 쓴 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많았다. 내가 취했던 무시 전략과 ‘거짓말이야’라고 지적하거나 ‘토착왜구’ 같은 날선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었다.

거짓과 망언, 거짓말쟁이라고 공박하는 ‘손쉬운 단죄’도 탈진실 현상에서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휘말려드는 일이라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탈진실 현상은 ‘사실의 참과 거짓과는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현상’이다. 최근 논란이 된 국내외 가짜뉴스 사례들을 보면, 양분된 한쪽이 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상대는 거짓 선동을 한다고 맞서면서 소모적 진실게임이 벌어지곤 한다. 강 교수는 ‘구역질 나는 거짓을 발화하는 이영훈과 저자들의 위치, 책이 놓인 배경과 맥락을 드러내고 거짓 주장을 상대화하는 방향으로 논쟁을 시작하면서 그 정체의 민낯을 까발리는 편이 낫다’고 제안한다.

먼저 지은이는 반일종족주의가 한국에서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며 한-일 우파 수정주의 연대에 주목한다. ‘위안부=성노예’설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국내 최초의 연구자란 이영훈의 자화자찬과 달리, 20년 전 일본 극우 역사부정론자 하타 이쿠히코의 주장에 맥이 닿아 있음을 파헤친다.

는 통계와 수치, 자료 등을 동원해 나열하고 객관적 실증과학의 모양새를 취한다. 강 교수는 이들이 입맛 따라 고른 자료, 일부 사례로 전체를 왜곡하는 등 ‘통계의 사실 왜곡’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5년 넘게 미국, 영국 등 국내외에서 수집한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이영훈‘들’의 주장을 낱낱이 반박한다. 특히 이영훈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절취하고 왜곡한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온전히 들려주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말했다. 역사 부정에 맞서려면 혁명적 발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부정론자들은 학문·사상·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강 교수는 반인도범죄 등 매우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진실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을, 역사부정죄를 입법해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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