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둥글게 둥글게만 사는 사람을 보면 흐린 눈을 뜨는 이,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삶이 더 소중한 이들의 ‘수호성인’ 같은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세상과 대결하는 태도’를 풀어쓴 에세이 (바다출판사 펴냄)를 내놨다.
특유의 기개와 과단성은 더욱 거침없다. 20대 초반 회사원일 때 쓴 첫 소설로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뒤, 문단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손에 농기구와 펜만 쥔 지 50여 년. 문학상, 강연을 거부한 채 오직 육체노동과 글쓰기에 전념하는 단순한 열정은 뜨거운 결기로 정련돼왔다. “문체의 흡착력과 간결성, 꿰뚫는 듯한 예리함과 일정하고 고른 시적 울림과 결곡한 미학, 긴긴 몰두의 역동적이고 균형 잡힌 힘”(소설가 전경린)은 산문에서도 변함없이 발휘된다.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이 76살 작가는 이제 더 쉽고 적실한 언어로 일본 사회의 약점을 파고든다. 먼저, 국가에 대들 줄 모르는 국민에게. “일본인은 왜 이렇게 윗사람에게 약할까. 상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는 맺을 줄 모르는 것일까.” “강자에게 매달리는 근본을 바꾸고 내가 나를 도와야 한다.” 원전에 찬성하는 유력자들에게. “문명을 고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인간이 낳은 문명이란 맹수(전쟁·원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원전이 존재하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농업도 어업도 임업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원전을 추진하려는 자들의 근성은 자멸할 요량으로 썩어 있다.”
그에게 국가란 “거대한 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패해가는 국가를 탄핵”한 그의 ‘자유론’은 언제나 현재시제 의문문. “잘 길든 개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막다른 상황에서 의연한 각오로 주인을 무는 개가 될 것인가. 혹은 처음부터 자유의 정신으로 무장한 들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이 될 것인가.” 말하자면 이런 권유다. 인간으로 죽자고. 길들여진 동물로 죽지 말고.
작가의 당부는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다. 평화를 말할 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한 가지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에 쉽게 복종하고 마는 ‘개의 처지’다. 이를 논하지 않는 집회는 그저 농담을 주고받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어쩌면 전쟁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까지 경고한다. “누구에게도 절대 지배당하지 않는 지성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비속해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니 싸워야 한다.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을 고귀하게 여기는 그는 힐링을 주는 작가가 아니다. 최고의 행복이니 뭐니 하는 허울뿐인 도취에 빠지지 말라고, 시간을 허비해놓고 그걸 고생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꾸짖는 작가다. 그런데도, 위안이 된다. 그의 글을 읽으면 잠시뿐인 안심이나 감언에 만족할 수 없는, 그것보다 훨씬 큰 ‘나, 개인’을 비로소 감촉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야말로 대접이다. 귀한 대접을 받았던 충만함은 오래오래 삶의 연료가 된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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