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하늘이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입니다. 하늘같이 파랗고 예쁘게 생겨서가 아니라 아주 사연이 많아 붙은 이름입니다.
서울 천호동 주택가에 살 때 일입니다. 4월 초 쌀쌀한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담과 뒷집 담 사이 좁은 골목에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몇 발짝 앞에 어미 고양이가 아무런 대책 없이 앉아 있습니다. 다람쥐같이 노란 줄이 죽죽 간 고양이는 작아도 너무 작은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가슴이 오싹오싹합니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어미가 새끼를 거두지 못합니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딱한 생각이 들었는지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숨이 넘어갈 뻔새끼 고양이는 오들오들 떨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대책이 없기는 어미 고양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생각 끝에 수건으로 감싸고 드라이기로 살살 바람을 일으켜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한참 수선을 떨자 새끼 고양이는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야옹야옹 합니다.
어미 고양이가 집 앞에 와서 눈을 부릅뜨고 왕오왕오 화난 목소리로 웁니다. 새끼를 내놓으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어떡하나 걱정하던 중에 잘 찾으러 왔구나 싶어 새끼를 내주었습니다. 뭔가 큰일이 지나간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어미 고양이는 혼자 와서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왕오왕오 계속합니다. 나가서 살펴보니 새끼는 없고 혼자입니다. “이 새끼, 제 새끼를 어디다 잃어버리고 우리 집에 와서 떼를 쓰는 거야. 저리 가.” 소리를 쳤지만 막무가내로 왕오왕오 합니다.
집 주위를 돌며 찾아보았더니 저 아랫집 쓰레기 더미 사이에 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딸내미와 둘이 새끼 고양이를 포대기에 감싸서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어찌나 조그마한지 야구모자 안에 쏙 들어갑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고 합니다. 수액을 맞고 사흘 동안 입원했다가 통원치료를 받기로 하고 퇴원했습니다.
염치없는 어미는 집 주위를 돌며 야옹거리지만 새끼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젖병을 빨지 않아 병원에서 받아온 우유를 손끝에 찍어주면 핥아 먹습니다. 도저히 고양이 노릇을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너무 하늘하늘해 남편이 고양이 이름을 하늘이라 지어주었습니다. 수저로 우유를 떠먹입니다. 한 5일이 지나니 그릇의 우유를 핥아 먹습니다. 힘 조절을 잘 못해 주둥이가 너무 푹 들어가 켁켁거리다가, 푸득득득 양쪽으로 머리를 흔들며 먹습니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사람에게 비비며 애교를 떨고 잠도 안 자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장난을 칩니다. 다리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들어 딸들은 하늘이만 보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납니다.
동네 고양이 데려다 밥을 먹이고하늘이는 아무 데고 들어가기를 좋아했습니다. 부엌살림을 정리하고 있으면 큰 김치통 속에 쏙 들어가 놉니다. “아이고 저리 가서 놀아라”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굳이 작은 통에도 들어가봅니다. 꺼내놓은 통이란 통에는 다 들어가보다가 몸이 안 들어가는 통에는 두 발만 넣어봅니다. 조그만 종지에는 한 발이라도 넣어봅니다.
몇 달 지나 중고양이가 되자 하늘이는 부엌 창문으로 들락거리며 밖으로 다녔습니다. 뒷집하고 우리 집 경계 담을 타고 가다가 담 사이에 있는 큰 단풍나무 위로 올라가 놀기를 좋아합니다. 설거지하다보면 꽁지를 바짝 세우고 뒷담을 타고 놀러 가는 게 보입니다. “야, 어디 가? 빨리 들어와” 하면 못 가고 들어와 같이 놀았습니다.
밖에 나가서 고양이들한테 뭐라 하고 다니는지, 어쩌다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동네 고양이들이 모여들어 하늘이의 밥을 먹고 하늘이는 망을 봅니다. 사람이 나와 “이놈들~” 하면 고양이 몇 놈이 후닥닥 뛰어나갑니다.
나는 그 무렵 한창 뜨개방을 다니며 열심히 뜨개질을 했는데, 하늘이의 애교에 녹아서 놀다보니 뜨개질도 못 하고 책도 한 자 못 읽고, 아무것도 못하고 한여름이 지나갔습니다.
그해 여름 온 가족이 하늘이도 데리고 경기도 광주 퇴촌 계곡으로 놀러 갔습니다. 하늘이는 조수석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를 세느라고 고개가 왔다 갔다 아주 바쁩니다.
물 좋고 나무 그늘이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늘이도 아주 얌전하게 가족 사이에 끼여 밥도 먹고 잘 놉니다. 점심을 잘 먹고 쉬는데 하늘이가 슬금슬금 돌아다니더니 숲속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습니다. 아무리 풀숲을 뒤지고 불러도 찾지 못하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잠을 못 자고 하늘이 걱정을 합니다. 그 어리석은 놈이 산속에서 홀로 얼마나 무서워할까. 까무러쳐 죽은 것은 아닐까. 어떤 짐승한테 잡아먹힌 것은 아닐까. 그렇게 눈이 동그랗고 예쁜 고양이는 다시없을 텐데… 남편은 “나도 눈이 동그래. 나를 보고 살면 되지, 그 배신자 같은 놈은 잊어버리고 그만 자라”고 합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남편이 하늘이가 없으면 정 못 살겠느냐며 찾으러 가자 합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식구가 모두 나섰습니다. 호미고 식칼이고 풀숲을 헤칠 도구도 챙깁니다.
어제 그 장소에 가서 온 식구가 아무리 하늘아 하늘아 불러도 대답도 없습니다. 어제 하늘이가 들어간 곳이 물이 양쪽으로 흐르는 삼각 지점이었습니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물을 건너서 다른 곳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삼각 지점을 향해 풀과 덩굴을 호미로 찍어 엎으며 샅샅이 뒤지며 올라갔습니다. 찾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만에 삼각 지점 끝까지 가니 덩굴 밑에 하늘이가 있었습니다. 새빨간 입을 크게 벌려 앙크런 이빨을 드러내고 하악거리더니 숨으려고 합니다.
이 맨재기 같은 고양이라니“어이구 이 맨재기(융통성 없는 사람) 같은 새끼 하는 행동 하고는. 저런 놈을 찾으러 그 애를 썼다니 그냥 확 버리고 갈까부다~.” 남편이 으름장을 놓자 딸들이 “하늘아 많이 놀랐지? 잘 봐, 아빠고 언니잖아~.” 달래고 붙잡아 하늘이를 차에 태워 돌아왔습니다.
하늘이는 차 안에서 다리를 쭉 뻗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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