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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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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또 찾아온 어미 고양이

어미가 사람에게 구조를 요청해서 살린 동그란 눈의 길고양이 하늘이
등록 2019-08-01 11:36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하늘이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입니다. 하늘같이 파랗고 예쁘게 생겨서가 아니라 아주 사연이 많아 붙은 이름입니다.

서울 천호동 주택가에 살 때 일입니다. 4월 초 쌀쌀한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담과 뒷집 담 사이 좁은 골목에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몇 발짝 앞에 어미 고양이가 아무런 대책 없이 앉아 있습니다. 다람쥐같이 노란 줄이 죽죽 간 고양이는 작아도 너무 작은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가슴이 오싹오싹합니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어미가 새끼를 거두지 못합니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딱한 생각이 들었는지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숨이 넘어갈 뻔

새끼 고양이는 오들오들 떨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대책이 없기는 어미 고양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생각 끝에 수건으로 감싸고 드라이기로 살살 바람을 일으켜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한참 수선을 떨자 새끼 고양이는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야옹야옹 합니다.

어미 고양이가 집 앞에 와서 눈을 부릅뜨고 왕오왕오 화난 목소리로 웁니다. 새끼를 내놓으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어떡하나 걱정하던 중에 잘 찾으러 왔구나 싶어 새끼를 내주었습니다. 뭔가 큰일이 지나간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어미 고양이는 혼자 와서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왕오왕오 계속합니다. 나가서 살펴보니 새끼는 없고 혼자입니다. “이 새끼, 제 새끼를 어디다 잃어버리고 우리 집에 와서 떼를 쓰는 거야. 저리 가.” 소리를 쳤지만 막무가내로 왕오왕오 합니다.

집 주위를 돌며 찾아보았더니 저 아랫집 쓰레기 더미 사이에 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딸내미와 둘이 새끼 고양이를 포대기에 감싸서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어찌나 조그마한지 야구모자 안에 쏙 들어갑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고 합니다. 수액을 맞고 사흘 동안 입원했다가 통원치료를 받기로 하고 퇴원했습니다.

염치없는 어미는 집 주위를 돌며 야옹거리지만 새끼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젖병을 빨지 않아 병원에서 받아온 우유를 손끝에 찍어주면 핥아 먹습니다. 도저히 고양이 노릇을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너무 하늘하늘해 남편이 고양이 이름을 하늘이라 지어주었습니다. 수저로 우유를 떠먹입니다. 한 5일이 지나니 그릇의 우유를 핥아 먹습니다. 힘 조절을 잘 못해 주둥이가 너무 푹 들어가 켁켁거리다가, 푸득득득 양쪽으로 머리를 흔들며 먹습니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사람에게 비비며 애교를 떨고 잠도 안 자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장난을 칩니다. 다리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들어 딸들은 하늘이만 보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납니다.

동네 고양이 데려다 밥을 먹이고

하늘이는 아무 데고 들어가기를 좋아했습니다. 부엌살림을 정리하고 있으면 큰 김치통 속에 쏙 들어가 놉니다. “아이고 저리 가서 놀아라”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굳이 작은 통에도 들어가봅니다. 꺼내놓은 통이란 통에는 다 들어가보다가 몸이 안 들어가는 통에는 두 발만 넣어봅니다. 조그만 종지에는 한 발이라도 넣어봅니다.

몇 달 지나 중고양이가 되자 하늘이는 부엌 창문으로 들락거리며 밖으로 다녔습니다. 뒷집하고 우리 집 경계 담을 타고 가다가 담 사이에 있는 큰 단풍나무 위로 올라가 놀기를 좋아합니다. 설거지하다보면 꽁지를 바짝 세우고 뒷담을 타고 놀러 가는 게 보입니다. “야, 어디 가? 빨리 들어와” 하면 못 가고 들어와 같이 놀았습니다.

밖에 나가서 고양이들한테 뭐라 하고 다니는지, 어쩌다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동네 고양이들이 모여들어 하늘이의 밥을 먹고 하늘이는 망을 봅니다. 사람이 나와 “이놈들~” 하면 고양이 몇 놈이 후닥닥 뛰어나갑니다.

나는 그 무렵 한창 뜨개방을 다니며 열심히 뜨개질을 했는데, 하늘이의 애교에 녹아서 놀다보니 뜨개질도 못 하고 책도 한 자 못 읽고, 아무것도 못하고 한여름이 지나갔습니다.

그해 여름 온 가족이 하늘이도 데리고 경기도 광주 퇴촌 계곡으로 놀러 갔습니다. 하늘이는 조수석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를 세느라고 고개가 왔다 갔다 아주 바쁩니다.

물 좋고 나무 그늘이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늘이도 아주 얌전하게 가족 사이에 끼여 밥도 먹고 잘 놉니다. 점심을 잘 먹고 쉬는데 하늘이가 슬금슬금 돌아다니더니 숲속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습니다. 아무리 풀숲을 뒤지고 불러도 찾지 못하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잠을 못 자고 하늘이 걱정을 합니다. 그 어리석은 놈이 산속에서 홀로 얼마나 무서워할까. 까무러쳐 죽은 것은 아닐까. 어떤 짐승한테 잡아먹힌 것은 아닐까. 그렇게 눈이 동그랗고 예쁜 고양이는 다시없을 텐데… 남편은 “나도 눈이 동그래. 나를 보고 살면 되지, 그 배신자 같은 놈은 잊어버리고 그만 자라”고 합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남편이 하늘이가 없으면 정 못 살겠느냐며 찾으러 가자 합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식구가 모두 나섰습니다. 호미고 식칼이고 풀숲을 헤칠 도구도 챙깁니다.

어제 그 장소에 가서 온 식구가 아무리 하늘아 하늘아 불러도 대답도 없습니다. 어제 하늘이가 들어간 곳이 물이 양쪽으로 흐르는 삼각 지점이었습니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물을 건너서 다른 곳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삼각 지점을 향해 풀과 덩굴을 호미로 찍어 엎으며 샅샅이 뒤지며 올라갔습니다. 찾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만에 삼각 지점 끝까지 가니 덩굴 밑에 하늘이가 있었습니다. 새빨간 입을 크게 벌려 앙크런 이빨을 드러내고 하악거리더니 숨으려고 합니다.

이 맨재기 같은 고양이라니

“어이구 이 맨재기(융통성 없는 사람) 같은 새끼 하는 행동 하고는. 저런 놈을 찾으러 그 애를 썼다니 그냥 확 버리고 갈까부다~.” 남편이 으름장을 놓자 딸들이 “하늘아 많이 놀랐지? 잘 봐, 아빠고 언니잖아~.” 달래고 붙잡아 하늘이를 차에 태워 돌아왔습니다.

하늘이는 차 안에서 다리를 쭉 뻗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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