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647/imgdb/original/2020/0415/4815869625620068.jpg)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스물일곱에 충북 제천 고암이라는 동네로 시집갔습니다. 그때 세월에 시골 풍습으로는 소문난 노처녀였습니다.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큰오빠가 27살에 결혼하고 작은오빠도 27살에 했습니다. 세 살 터울이어서 차례를 기다리다보니 나이가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자리에 중매한다고들 하는데 내가 어중되게 생겨서 시집갈 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내 생각에는 축산을 하며 농민 후계자로 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중매쟁이의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만날 당시는 공무원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농사짓지 않고 살기를 바랐는데 잘됐다고 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의 루서 버뱅크(미국의 원예개량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자기는 결혼하면 가축을 기르며 농사지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농사일에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짐승을 키우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습니다.
돼지 새끼에게 미음과 사과를 먹이며남편은 결혼하기 전 돼지 새끼 아홉 마리에, 일반 돼지 새끼의 세 배 값을 주고 종묘돼지 한 쌍을 사놓았습니다. 소도 한 마리 있고 비쩍 마른 해피라는 개도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재양길(첫 친정 나들이)을 왔다가 시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까맣고 예쁜 돼지 새끼들이 줄줄이 마중 나왔습니다. 나는 치렁거리는 한복을 벗을 새도 없이 돼지 몰이에 동참했습니다.
시집 가족의 성격은 친정 식구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람들 성격만 다른 게 아니라, 짐승들 성격도 묘하게 달랐습니다.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파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모든 게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친정에서는 채소와 여러 재료를 썰고 다지고 끓이고 섞어서 주었습니다. 시집에서는 겨 따로, 물 따로 먹이를 주었습니다. 친정에서는 짐승들이 예쁘다고 착하다고 하면 눈을 껌벅거리며 사람을 보면 웃을 줄도 알고 말귀를 잘 알아들었습니다. 굳이 줄을 매지 않아도 우리를 뛰어넘거나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일이 힘들어도 짐승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사랑스럽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시집 돼지는 높이가 1.5m쯤 되는 우리를 매일 뛰어넘었습니다. 온 식구가 동원돼 잡아 가두고 다시는 뛰어넘지 못하게 단속합니다. 종묘돼지는 주둥이가 뭉툭하고 다리도 엇청한 것이 보면 잘생겼다 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까만 털이 윤기가 흐르고 다른 돼지들보다 멋있고 성장이 빨랐습니다. 힘이 넘쳐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큰길로 나가서 달리는 차 앞을 건너가기도 합니다. 열한 마리의 돼지 새끼는 누가 하나 탈출하기 시작하면 모두 같이 탈출합니다. 시아버지는 돼지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차에 치일 뻔해 기사한테 많이 욕먹은 날, 시아버지는 큰 막대기로 정말 죽일 듯이 돼지를 때렸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진 것을 안아다 우리에 넣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야야, 물 끓여라. 죽으면 튀해서 가족이 뜯어 먹자” 하셨습니다.
신혼방에는 집 뒤로 별도의 부엌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죽을 것같이 벌렁벌렁 숨만 쉬는 돼지 새끼를 부엌 바닥에 짚을 깔고 이불도 깔고 덮어주었습니다. 밤에 불을 때며 미음을 끓여 수저로 떠먹였습니다. 약이 되는 사과를 사다가 숟가락으로 긁어 먹이기도 했습니다. 돼지가 아플 때는 사과가 특효약이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시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와 “야야, 물 끓여라” 하십니다. “아버님, 아직 안 죽었는데요.” “그래?”
간호하기 나흘째 되는 날, 큰시누이가 다니러 왔습니다. 숟가락으로 돼지에게 미음을 먹이는데 “언니, 뭐 해?” 합니다. 돼지가 우리를 뛰어넘었다고 하니, “언니 그런 거 유도 아니야. 새끼 아홉 마리 딸린 어미돼지가 새끼를 다 데리고 저 홍광국민학교 뒤로 해서 의림지 비행장으로 그렇게 돌아다녔어.”
강아지 팔아 부엌을 개조해야지간호한 지 일주일이 되자 돼지 새끼는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8일 만에 우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때 술에 취해 들어와 시아버지는 또 “물 끓여라, 돼지 새끼를 튀해 가족이 뜯어 먹자” 하십니다. “아버님, 돼지 새끼가 살았는데요” 하니 “니가 수고했다, 니가 수고했다” 하십니다. 죽다 살아나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 우리를 뛰어넘었습니다. 짐승도 자꾸 욕을 먹고 밉다 밉다 소리를 들으니 모습도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주둥이가 이상하게 뾰족하고 눈도 이상하게 흘끔거립니다.
늦은 가을에 결혼했는데 가자마자 아이가 생겼습니다. 해피도 생전 처음으로 새끼를 가졌답니다. 며느리가 오자마자 손주도 보고 개도 새끼를 가졌다고 무척 좋아들 하였습니다. 해피는 주는 대로 잘 먹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며 아주 사랑스러워졌습니다.
우리 집과 아주 가깝게 앞집이 있었습니다. 앞집 아줌마는 개를 좋아하는데 개가 없었습니다. 해피를 자기네 개처럼 부엌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먹을 것을 주고 귀여워했습니다. 우리 집은 부엌 구조가 개가 들어와 부닐(가까이 따르며 붙임성 있게 굴다) 만큼 편한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새끼를 낳을 때가 되자 해피는 앞집 부엌에서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정월이어서 아직 쌀쌀한 날씨에 개죽을 날라다 먹였습니다. 아무리 앞집이 가깝다고는 하지만 죽을 날라다 먹이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강아지가 아주 복스럽게 잘 커서 저 강아지를 팔면 불편한 부엌을 개조할까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꿈 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송아지도 낳으면 남에게 거저 준다고 했습니다. 그냥 하는 소리거니 했습니다. 강아지가 젖 뗄 때가 되자 술을 드시고 친구를 데리고 오셔서 강아지를 들려 보냈습니다. 다음날 지나가는 친구를 불러 강아지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강아지 다섯 마리를 준 다음날은 온 식구가 다 어디를 가고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내다보니 옆집에 새댁들이 모여 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나도 놀러 갔습니다. 다들 강아지가 탐이 나서 팔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어른들이 오시기 전에 두 마리를 팔아버렸습니다.
강아지는 거저 주고 돼지는 흥정 안 하고저녁때가 되자 시아버지는 친구 두 분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야야, 강아지 두 마리를 가져오너라” 하셨습니다. “아버님, 사람들이 와서 돈을 던져놓고 강아지를 가져갔어요. 아버님 돈 여기 있어요” 하고 돈을 드렸습니다. “잘했다, 니가 잘했다” 하며 혼내지는 않으셨습니다.
나는 임신해 무거운 몸으로 돼지를 열심히 거두었습니다. 하루는 아침 일찍 트럭을 끌고 돼지를 팔라고 돼지 장사가 왔습니다. 시부모님은 그날 열한 마리 돼지를 냉큼 트럭에 실어 보냈습니다. 시어머니는 “꾀도 없이 돼지 장사가 왔을 때 죽을 빨리 좀 먹였으면 무게가 더 나갔을 것 아니냐”고 나를 나무랐습니다. 내 상식으로는 여러 장사를 불러 값을 튕겨보고 최고의 값을 받을 줄 생각했습니다. 남편도 나도 진저리가 나서 축산의 꿈을 접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눈살 찌푸리게 한 금남로 극우집회, 더 단단해진 ‘광주 정신’
배우 김새론 자택서 숨진 채 발견
김새론 비보에 김옥빈 ‘국화꽃 애도’…지난해 재기 노력 끝내 물거품
계엄군, 국회 본회의장 진입 막히자 지하로 달려가 전력차단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단독] 명태균 “오세훈 ‘나경원 이기는 조사 필요’”…오세훈 쪽 “일방 주장”
대통령실, 광주 탄핵찬성 집회 ‘윤석열 부부 합성 영상물’ 법적 대응
“여의도 봉쇄” “수거팀 구성”…‘노상원 수첩’ 실제로 이행됐다
대통령·군부 용산 동거 3년…다음 집무실은? [유레카]
질식해 죽은 산천어 눈엔 피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