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내가 사랑한 동물] 이름이 여럿인 길고양이

고양이 사랑에 푹 빠진 큰딸 가족
등록 2020-07-04 22:18 수정 2020-07-09 09:55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큰딸은 인천 만수동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아이들 논술 지도도 하면서 한창 재미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사위 직장이 경기도 화성이어서 하루 출퇴근 시간이 4시간씩 걸린다고 늘 걱정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결단을 내리고 화성으로 내키지 않는 이사를 했습니다. 시내에서 좀 멀리 떨어진, 아파트 뒤쪽이 넓은 전원지로 이어져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달콩아 나비야 곰돌아

처음엔 마음 붙이고 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달밤에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습니다. 거기에서 콩 색깔이 나는 고양이를 만났답니다. 처음 만났는데 오래전부터 아주 친한 사이처럼 발라당 누워 뒹굴면서 반가워합니다. 한참 같이 놀다가 집으로 오는데 졸졸 따라왔습니다. 내일 다시 만나자고 억지로 떼어놓고 집으로 왔습니다.

달밤에 만난 콩 색깔이 나는 고양이라 해서 달콩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달콩이는 만나는 사람마다 안 반가운 사람이 없습니다. 달콩이는 동네 인기 스타입니다. 누구는 나비야~ 부르고, 누구는 곰돌아~ 부르기도 하지만 그 많은 이름을 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뭐라 불러도 야옹 대답합니다. 다들 자기네 나름대로 간식도 주고 밥도 챙깁니다. 사람들이 아파트 옆 골목에 스티로폼으로 따뜻하게 집도 만들어주고 밥도 주었습니다.

많은 길고양이가 모여 밥을 먹고 놀고 하지만 다른 고양이들은 아무리 친절하게 해줘도 사람을 보면 피합니다. 유독 달콩이만 사람을 아주 잘 따릅니다.

어느 날 달콩이가 보이지 않고, 달콩이가 놀던 길목 담벼락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살던 길고양이는 제가 입양 보냈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해할까봐 알려드립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 혹시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집으로 보냈습니다. 잘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웃집 아저씨”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한시름 놓았지만 허전하고 섭섭했습니다. 누가 데려가기 전에 우리가 데려다 키울걸 그랬다고 아이들은 후회도 했습니다. 한참 뒤에 안 일이지만 딸네 집 위층에 사는 아저씨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 길고양이를 많이 입양시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 아저씨를 달콩이 아저씨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큰딸은 경력 단절 16년 만에 취업해서 직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출근하고 며칠 뒤 회사 흡연실 한쪽에 길고양이가 와서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습니다. 큰딸은 달콩이 대신 길고양이 가족을 돌보았습니다. 새로 다니기 시작한 직장이 서름서름하기만 한데 고양이 가족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길고양이는 검은색 흰색 노란색 세 가지가 섞였고, 다리가 길고 상큼하고 경쾌하고 예뻤습니다. 긴 꼬리를 바짝 쳐들고 언제나 유쾌하고 당당했습니다. 너무 예뻐서 예쁜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눈도 못 뜬 다섯 마리의 육아가 무척 힘들 텐데 예쁜이는 정성을 다해 새끼를 돌봅니다.

흡연실의 고양이 가족

회사 사람들은 예쁜이네 가족을 위해 사료를 사다 나르고 자식처럼 간식을 사다 주었습니다. 담배 연기가 어린 고양이 새끼들의 심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데 흡연실에 사는 게 걱정되었습니다. 새끼 고양이 가운데 어미를 닮아 누런색과 검은색이 섞인 놈이 두 마리 있습니다. 등이 까맣고 배 쪽은 하얀 놈이 한 마리, 다람쥐 같은 놈이 한 마리, 하얀 놈이 한 마리입니다. 한 달쯤 지나자 새끼들도 어미를 닮아서 친화력 좋게 사람들과 잘 놉니다. 쉬는 시간이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나 안 피우는 사람이나 흡연실로 달려갑니다. 흡연실에서는 사나운 사람도 없고 잔소리쟁이 상사도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입이 귀에 걸려 귀여운 고양이들을 돌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고양이 새끼들은 어느 놈이 더 예쁘다고 말할 수 없이 다들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사랑으로 성장이 빨랐습니다. 그런데 예쁜이가 힘없이 시름시름합니다. 제 털도 고르지 못해 꺼칠합니다. 새끼들은 어미가 아픈데도 자꾸만 젖을 찾아 파고듭니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미도 새끼도 힘들어질 것 같았습니다.

큰딸은 급한 마음에 고양이 새끼 다섯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큰아이 우진이에게 알레르기가 있어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지 못했습니다. 큰애 방에서 뚝 떨어진 막내 방에 다섯 마리 모두 갖다놓았습니다. 밖에서 어미가 키울 때는 사료만 주고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었는데, 새끼들은 아직 어려서 화장실도 가릴 줄 몰라 아무 데나 똥 싸고 오줌 싸고 난리입니다. 막내 지우 방은 냄새가 펄펄 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고양이가 너무 키우고 싶어서 아무리 난장판이 되어도 좋다고 합니다.

윗집 달콩이 아저씨한테 새끼들 입양을 부탁했습니다. 달콩이 아저씨는 마당발이어서 고양이 네 마리의 가족을 찾아주었습니다. 온몸이 하얗고 이마와 꼬리에만 검정 점이 있는 새끼 한 마리만 남았습니다. 누가 며칠 있다가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약속한 날이 지나도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입양한다던 사람은 마음이 변했습니다.

목에 길게 엎드리는 게 좋아

차라리 잘된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가 집에 있는 몇 주 동안 우진이가 별 탈 없는 걸 보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입양이 안 됐다는 핑계로 하얀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눈송이라 지었습니다. 눈송이는 큰애 우진이와 작은애 우혁이 목에 올라가 길게 엎드려 놀기를 좋아합니다. 그놈의 고양이 키우지 말라던 사위는 말만 그렇게 하지 고양이 똥도 치워주고 데리고 놀아도 줍니다. 사위는 고양이 타워도 멋지게 지어주었습니다.

큰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예쁜이입니다. 우진이와 우혁이는 달콩이가 프로필 사진입니다. 지우는 눈송이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했습니다. 큰딸네 가족은 고양이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