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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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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나야 우리를 잊어버려

마트에서 사서 손주들이 키운 이구아나 씽씽이
등록 2020-02-29 23:28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손녀딸 지우가 한 살 때 일입니다.

인천에 사는 큰손자 우진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우리 집에 너무나도 귀여운 씽씽이를 보러 오시라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작은손자 우혁이도 전화를 합니다. 씽씽이를 보러 오시라고. 씽씽이가 뭐냐고 물어도 와보시면 안다고 합니다. 어린놈들이 하도 자랑해서 성남에서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씽씽이를 보러 갔습니다. 큰딸은 엄마, 주말에 우리가 가면 같이 오지 그 먼 데를 오셨냐고 반가워합니다.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우지

조그만 유리 상자에 10㎝쯤 될까 눈이 빠끔한 가느다란 이구아나 새끼가 들어 있습니다. 이름이 씽씽이랍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들여다보며 좋아들 합니다. 우진이가 마트에 갔는데 이구아나가 무척 귀여워 보여서 아버지를 졸라 사왔답니다. 우리 집에 이렇게 예쁜 이구아나를 사온 것은 자기의 공로라고 주장합니다.

상추 등 여러 채소를 넣어주었는데 조금씩 뜯어먹고 있습니다. 애들은 귀엽다고 예쁘다고 하는데, 푸르뎅뎅한 색에 등에 비늘이 비죽비죽 서 있는 게 무지 징그럽습니다. 무슨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가끔 눈만 껌뻑거려 애완동물이 아니고 무슨 관상용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동안 안 가다 가보면 씽씽이는 놀랍도록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보니 유리 상자 안에 있어야 할 씽씽이가 감쪽같이 없어졌답니다. 온 식구가 종일 찾아도 못 찾았습니다. 혹시나 어디 있으면 먹으라고 사료를 방구석마다 놔두고 주방에도 물과 같이 두었습니다. 며칠이 가도 사료를 먹은 것 같기는 한데 찾지는 못했습니다. 7일 만에 애들 엄마가 방청소를 하다 보니 우진이 방 침대 곁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그날 지우는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씽씽이를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가 되었습니다.

씽씽이는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데 허물 벗는 모습도 재미있다고 합니다. 살가죽이 쩍쩍 갈라지며 허물이 벗겨지고 사람이 옷을 갈아입을 때처럼 쌈박하고 쑥쑥 자란다고 합니다. 솜씨 좋은 사위는 씽씽이가 크는 대로 유리 상자를 새로 짜고 속에 들어가는 소품도 새로 제작합니다.

손주들은 씽씽이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장가가면 씽씽이는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고 합니다. 지우도 씽씽이는 자기 것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주장합니다. 짓궂은 오빠들은 지우를 놀리느라 자기 것이라고 더 우기며 소동을 벌입니다.

밤낮 사흘을 울고

5년쯤 되니 씽씽이는 긴 꼬리까지 1m 넘게 컸습니다. 사위는 지우 방에 1m 높이의 거의 벽 한 폭을 차지하는 유리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유리 상자 속에는 씽씽이가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씽씽이 침대도 있습니다. 씽씽이가 올라갈 수 있는 나무 타워도 더 멋지게 만들었습니다. 전구도 두 개 넣어 골고루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씽씽이도 넓은 집을 맘에 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씽씽이는 양쪽 다리를 번갈아 들고 큰 눈을 껌벅거리며 춤을 춥니다.

내 생각에는 다른 방에다 만들지 어린 여자아이가 무서워할 것 같았는데, 지우는 씽씽이를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씽씽이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하던 씽씽이가 며칠째 좋아하는 애호박도 잘 먹지 않았습니다. 늘 타워 위에서 놀았는데 바닥에 엎드려 잘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동물병원에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했답니다.

어떡하나 어떡하면 좋을까 걱정하는데, 어느 날 아침 씽씽이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려던 우진이가 발견했습니다. 아이들 셋이 아주 큰 소리로 집이 떠나갈 듯이 울었습니다. 뭐라 달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우진이와 우혁이를 엄마가 억지로 학교에 데려다주었답니다. 우진이와 우혁이는 학교 수업 시간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둘은 밤낮 사흘을 울었습니다. 아이들 말로는 평생 울 울음을 다 운 것 같다고 합니다.

사연을 들은 선생님들은 씽씽이가 하늘나라로 간 것은 참 슬프겠구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것이니까 하늘나라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빌어주라고 달랬다고 합니다.

큰딸은 지금도 애호박만 보면 씽씽이가 좋아하던 애호박을 많이 못 먹인 것이 미안하다고 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애들 아빠한테도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든답니다. 사위 혼자 씽씽이를 묻어주고 정성 들여 만든 씽씽이 집도 혼자 다 처리했습니다. 큰딸 얘기로는 그때부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 것 같다고 합니다.

언젠가 하늘에서 만나자

천방지축 꼬맹이였던 큰아이는 아빠만큼 키가 훌쩍 커서 이번에 고등학생이 됩니다. 작은아이는 중2가 되었습니다. 씽씽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그날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그때를 추억합니다.

씽씽아.

씽씽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씽씽아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에게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길 바라.

우리를 기억에서 지워버려. 좋은 친구들과 신나고 자유롭게 해보지 못한 모든 것을 해보고 잘 살기를 바라.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너무너무 미안했다.

-우진이가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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