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믿음을 견지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격차는 심화되며, 고용은 계속 불안정해지고, 혐오는 격화된다. 내리막길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듯한 우리의 삶. 바꿀 순 없을까? 모든 사회 상황과 환경문제에 통용되는 해답을 찾긴 쉽지 않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더라도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소중하다. 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윤찬영 현장연구센터장이 쓴 는 ‘사회혁신’을 변화의 열쇳말로 제시한다. 너무 흔히 듣는 단어의 조합(사회+혁신)이기에 더욱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 사회혁신의 정의를 내리면 이렇다. “사회적 필요와 문제에 대한 참신한 해법을 발명하고 지원을 확보하고 실행하는 과정이자 공공-민간-비영리 섹터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대화를 중재하는 행위.” 지은이는 이 사회혁신이 벌어지는 국내외 현장 30곳을 소개하면서 그 개념을 피부로 와닿게 설명한다.
우선, 사회혁신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와 필요’는 뭘까. 쓰임새를 잃고 황폐해진 산업 부지, 주택가 골목길에서 흔히 벌어지는 주차 전쟁, 함부로 나뒹구는 쓰레기봉투, 아무도 모르게 홀로 세상을 하직하는 노인들, 교통망이 잘 갖춰지지 않은 오지에서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산모들….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이미 많은 사람이 ‘참신한 해법’을 시도해왔다. 조선소 공장 터를 청정기술 생태주거단지로 바꾸고 ‘에너지 화폐’인 ‘줄리엣’을 사용하는 네덜란드의 ‘데 퀘벌’,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을 공유주차구역으로 바꾸고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관리하는 ‘도시광부’ 제도를 도입한 서울 금천구 독산4동, 전통적인 노인 돌봄 서비스를 ‘관계복지’ 개념으로 전환해 노인 각자의 재능과 시간을 활용하는 영국의 ‘서클’, 드론을 활용해 아프리카 르완다의 오지에 혈액을 공급하는 스타트업 ‘집라인’ 등등.
하지만 변화가 가능하려면 개인, 정부, 시민사회, 전문가가 모두 힘을 합해 예산과 공간 등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뒷받침도 중요하다. 암스테르담시는 10년 임대와 대출보증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페이스 앤드 매터’(Space & Matter)라는 건축가 그룹 등에 데 퀘벌을 내줬고, 건축가들은 하우스 보트를 개조해 친환경적 공간을 꾸몄다.
스마트 에너지 기업과 전기 그리드 운영사도 결합해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에 힘을 보탰다. 동네에서 가장 골치 아픈 쓰레기·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산4동에선 공무원과 주민자치위원회, 프로젝트팀이 머리를 맞댔다. 개발 바람에 헐릴 뻔했던 옛 건물과 거리를 보존하고 활기를 불어넣은 영국의 ‘그랜비 포 스트리츠’는 20년에 걸친 주민들의 노력과 어셈블이라는 예술가 그룹, 리버풀 시의회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분명한 것은 기업과 시장이 독주하는 시대,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걸 혼자선 해낼 수 없다. 빛나는 별 하나하나가 별자리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회혁신은 실현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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