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랄 때 적용된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당장 크는 아이들을 보면 실감이 안 나지만(대체로 늘 지랄하니까) 부모 품 벗어나 제힘으로 삶을 꾸린 시간이 쌓이면 ‘견적’이 나온다. 어린 시절 한동네 살던 딸, 아들들의 소식을 세월 지나 바람결에 들으면 특히 실감 난다.
길에서 주운 100원짜리 동전도 주인 찾아줘야 한다고 애쓰던 범생이 아들은 툭하면 늙은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고 하고, 유명 대학에 떡 붙었다고 떡도 돌린 딸은 부모와 연을 끊다시피 산다고 하며, 오토바이 훔쳐 경찰서에 잡혀 있던 또 다른 아들은 일찌감치 속 차리더니 벌써 손주까지 보아 그득한 대가족을 꾸렸다고 한다. 부모 뒷목 여러 번 잡게 했던 날라리 딸은 하는 사업마다 잘돼 제 부모와 그 형제자매까지 모아 틈만 나면 밥을 사거나 여행을 보내준다는데. 소식을 전하는 마이크가 내 늙은 부모이니 나름 그 눈높이에서 선택·과장된 걸 감안하더라도 유명했던 자식계 몇몇 대표 선수들의 수십 년 뒤 ‘대차대조’는 이렇듯 달라진다. 물론 그 사이에는 나를 포함해 무수히 많은 이도 저도 아닌 무명의 자식이 즐비하다만, 아직 다 살지는 않았으니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다.
함께 실려오는 누구 엄마, 누구 아빠의 사연은 서럽고 딱하다. 내 부모는 당신들 늙은 건 생각 안 하고 친구나 이웃이 늙은 것만 짠하게 여긴다. 처신하는 게 영 어설픈 지인에게 치매 검사 받으라고 권유했다가 버럭 한소리 들었다거나, 잘난 자식들 둔 또 다른 지인이 국밥 한 그릇 값에 벌벌 떨고 휴대전화도 낡아빠져 문자며 사진도 못 주고받는다고 혀를 차는 모습을 보면 “아이고 사돈 남 말 하신다”는 소리가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이 망가져 앞산에 떠오르는 해를 못 찍었다고 새해 아침부터 속상해하길래 새로 장만해 드렸더니, 다음날 개통하자마자 대리점으로 달려가 “이거 통화도 한 번 안 한 새것인데 영 손에 안 익으니 반납하고 쓰던 걸로 다시 쓰겠다”고 ‘졸라댄’ 아버지와 절뚝이는 무릎으로 지하철로 1시간도 더 걸리는 한의원에 침 맞으러 다니면서 간호사들에게 마른 멸치니 누룽지니 바리바리 싸다 주고 더 멀리 사는 친구까지 불러내 데리고 가서 잘해달라 ‘치대는’ 어머니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제 발로 다닐 만큼 건강하고 친구도 있어 이렇게 사고도 치고 오지랖도 떠는구나 여겨야 마땅하건만, 쉽지가 않다.
내 부모도 이웃 노인 대하듯 정중히 대해야 할 텐데… 그게 참 그리 되지 않는다. 자꾸 평가하고 나무라고 따지고 가르치려 들게 된다. 가령 창문 열면 난방비 많이 든다고 제대로 환기를 안 시킨다거나, 쓰레기봉지 아깝다고 몇 날 며칠 모은 걸 낑낑대며 눌러 담는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다.
옆에 있던 내 아이가 집에 와서 한마디 한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 민망하실 거야.” 찔렸다. 나날이 ‘일치얼짱’ 하는 애 국어 실력과는 별개로 말이다. 충고가 뒤이었다. “웬만한 건 봐도 모른 척하고, 뭐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음, 네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대략 짐작이 가는구나.
나름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늙은 부모와 가까이 사는 것은 가끔 철렁하고 자주 손이 가는 일이다. 그걸 기꺼이 하는 걸 효심이라 한다면 나는 효심이 없다. 그저 예의를 갖추고 책임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혹시라도 내가 못되게 군다면 어릴 때 덜 부린 ‘지랄’이 남아서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수발 총량의 법칙’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이 정도로 손이 가니 더 늙어서는 상대적으로 덜 갈 것이라고 믿으며, 혹은 부모에게 손이 가니 자식에게는 덜 갈 거라고 여기며, 나는 오늘도 늙은 부모를 예뻐한다. 부모와 나 사이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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