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울리는데 ㄱ은 발신자를 보고는 받지 않았다. 장인이란다. 말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어르신들이 있으니… 바쁜 시간이라 그런가 했는데 거절 문자조차 보내지 않고 계속 울리게 두는 건 의아했다. 며칠 뒤 대화 중에 휴대전화가 또 들들댔다. 이번에는 어머니란다. 짐작되는 용건이라며 역시 받지 않았다. 받았다가 금방 끊으면 어머니가 오히려 섭섭해할 수 있다고 했다. 유별난 양가 부모님을 둔 줄 알았다. 겪어보니 유별난 건 그였다.
엄청난 ‘뭉개리우스’다. 일단 뭐든 피하고 미루고 본다. 그러면서 누구한테도 ‘노’라고 못한다. 이런저런 업무도, 만나자는 약속도 거절 못한다. 그러느라 늘 허둥대면서도 뭉갠다. 그렇다고 게으르거나 무능한 건 아니다. 꽂힌 일이나 좋아하는 일은 잘 해치우는 편이다. 긴장이 따르거나 하기 싫은 일, 혹은 그런 사람과 얽힐 때 유독 그런다. 이런 상사나 동료는 최악은 아니라도 상당히 나쁘다. 이런 남편이라면? 글쎄, 같이 안 살 거 같은데.
ㄴ의 엄마는 ㄴ에게 자주 전화한다. 쇼핑 가자, 누구 만나는데 같이 가자, 네 집 앞인데 들르겠다…. 단짝 친구나 자매 사이 같지만, ㄴ은 엄마를 버거워한다. 연락이 오면 핑계부터 찾는다. 엄마는 그런 딸을 손에 쥐지 못해 안달한다. 허락 없이 냉장고 바꾸었다고 엄마가 화나서 몇 달 동안 말을 섞지 않은 적도 있단다. 그렇다고 ㄴ이 엄마에게 성숙한 태도를 보인 적도 없다. 들볶이거나 버럭 한소리 듣지 않고서는 엄마와 관련된 것을 먼저 생각하거나 처신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여동생들은 그런 그에게 ‘뭉개리아나’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는 일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다. 어릴 때부터 어떤 이유로든 주목받던 아이였다. 누나 셋 여동생 하나 둔 ㄱ은 그 시절 귀한 외아들로 ‘궁디 팡팡’ 받았고, 세 자매 중 맏딸인 ㄴ은 상대적으로 ‘똑실한’ 동생들 탓인지 머리 쥐어박히기 일쑤였다. 둘은 누구에게든 밉보일까 혼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자주 내비쳤다. 완벽한 아들과 천덕꾸러기 딸. 혹은 ‘그 부모의 아들, 딸’.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거나 성장하지 못하고 갇혀 있다고 할까.
ㄱ은 양가 부모에게 휴가도 비밀로 하는 눈치다. 혹시나 어른들이 앞뒤 안 재고 ‘들이댈’까봐 그런다는데. 소신껏 행동하지 못하면서 끝까지 좋은 사위, 좋은 아들이고는 싶은 모양이다. 그런 그도 하나뿐인 제 아들에게는 어찌나 살뜰한지, 고등학생 책가방까지 싸준다. 휴대전화는 매번 최신형으로 바꿔준다. 과보호에 과투자다. ㄴ은 노인이 되어서도 더 노인인 엄마에게 질질 끌려다닐 것 같다고 걱정하는데, 다 큰 제 딸에게 끌려다니는 걸 더 걱정해야 할 듯하다. 거절 못하고 어린애 같은 엄마의 성정을 귀신같이 활용하는 게 그 집 멋쟁이 백수 딸내미다. 나잇값 못하고 살아온 태도가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정작 본인들은 별로 안 힘들다. 회피하고 도망치며 나 몰라라 멀쩡히 산다. 대신 주변 사람들이 힘들다. 그 뒷감당을 누군가는 하지 않겠는가.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도 치다꺼리를 해주는 게 늙은 부모이거나, 부모처럼 보모처럼 눈 밝고 책임감 많은 배우자나 형제자매, 이웃일 수도 있다. 받기만 하는 그들은, 그래도 되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고 그래온 거다. 이런 수발 유발자들 같으니라고.
어떤 사이에서도 이런 불균형은 좋지 않다. 건강하지 않다. 자꾸 손이 가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있는데 챙겨줘도 챙겨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라면, 혹시 ㄱ이나 ㄴ 같은 ‘뭉갬의 끝판왕’이나 외면하기는 어려운 사이라면, 정성껏 대하지 말고 대충 대하길 권한다. 그들이 자신을 대하듯이 말이다. 스스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넘어서까지 주변에서 대해줄 필요도, 방법도 없다. 나만 미치고 팔짝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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