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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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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예쁜 사이는 없다

‘자기 객관화’와 ‘균형감’의 중요성
등록 2018-02-08 02:21 수정 2020-05-03 04:28
영화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영화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소싯적에 엄마가 화나서 “이럴 거면 당장 집을 나가라”고 고함칠 때, 오빠언니들 뒤에서 벌벌 떨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에이, 말은 저래도 설마 자식을 진짜로 내쫓고 싶겠어?’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알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엄마의 고함에는 일말의 진심이 담겼다는 것을.

모성은 감정이 아니다. 본능도 아니다. 의지다. 엄마 노릇은 전적으로 ‘구력’에 달렸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맞다면 어느 장르보다 잘 들어맞을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진정한 미래지향적인 아이를 키우면서 새삼 의지로 낙관한다. 시계는 돌아간다. 우리 인간적으로 이것 좀 하자, 했을 때 “엄마, 우리 그냥 인간 하지 말자”는 아이는 한술 더 떠 “크느라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다”며 드러눕는다. 그게 갱년기를 앞둔 나에게 할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너무 잘해준 것 같다. 호강에 겨우면 요강에 똥 싼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안 되겠다. 네가 나를 궁금하게 만들어야겠다. 스텝 1.

너의 성장기 세뱃돈과 뜻있는 친·인척의 단계별 금일봉은 어디로 갔는지 묻지 마라. 연초에 짝으로 들여놓은 연태고량주 대자의 가격도 알려고 하지 마라. 내 두피와 각질 관리를 위한 용품과 서비스 비용의 출처도 비밀이다. 궁금해야 청춘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머릿결이 빤짝이는 네 나이 때는 눈에 보이는 곳 위주로 꾸미고 가꾸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내 나이가 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부터 챙겨야 한다. 그렇다고 마음, 영혼 이런 곳은 아니다.

너의 취향을 존중한다. 스텝 2.

인간이 매 끼니를 먹어야 한다는 건 편견일 수 있다. 긴 겨울방학, 네 입 주변이 허옇게 일어나는 것을 보며 그간 학교 급식이 얼마나 균형 잡힌 식단이었는지 나도 깨달았다만, “엄마가 오늘 맛있는 거 해줄까?” 물었을 때 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그냥 맛있는 거 사먹자”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조금은 달랐을지 모른다. 아무튼 너는 이제 밥벌이는 못해도 밥상은 차릴 때가 됐다. 네 입맛대로 차리렴.

공정하자. 스텝 3.

또래끼리 지지고 볶는 게 일과인 소녀시대에 접어든 너는 유독 민감해 보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아이고 걔가 왜 그런다니. 근데 두고 봐봐. 분명 더 나쁜 점이 보일 거야”이다. 입 내밀고 있던 너는 어이없어한다. 빈말 아니다. 사람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를 감당하는 것은 관대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서다. 공부한 만큼 성적 나온다. 사랑한 만큼 사랑받는다. 네가 뭐라고 넘치게 받으려 드니.

이 스텝 원투스리는 파트너에게도 해당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과 ‘사추기’를 지나는 배우자의 행동거지는 때와 상황과 장소만 바꾸면 꽤 싱크로율이 높다. 굳이 왜 둘을 세트로 묶느냐고 묻는다면, 너에게 꿈이 있듯 나에게도 꿈이 있다고 대답하련다. 내 장래 희망은 현모양처거든. 장래에 말이다.

애는 애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자기 객관화’와 ‘균형감’이 중요하다. 힘껏 달려온다고 달려왔는데 어느 날 문득 한숨이 나온다면, 나는 누구인가 싶다면, 그럼에도 세상 눈치가 보인다면, 거울을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봐봐, 당신이 주연급 생김새는 아니잖아. 생각보다 세상은 당신에게 관심 없어. 그러니 주눅 들 것 없어. 요즘 애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할 것도 없고. 걔들도 당신이 왜 그러는지 몰라. 우리가 일찍이 ‘부장님들’의 그 무수한 취미와 특기를 다 이해해서 웃어드린 거 아니잖아.

부모자식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예쁜 사이는 없다. 단 서로를 중요하게 여겨주는 한, 관계의 성장판은 닫히지 않는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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