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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화법보다 태도

정우성이 말 잘하는 이유
등록 2018-01-17 00:54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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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좋은 와꾸’에 ‘좋은 정신’이 깃든다는 것을 생방송 뉴스 중에 증명한 정우성(사진) 배우가 말까지 그렇게 잘할 줄이야.

보통 정우성 정도의 비주얼이면 말을 잘 못한다. 남자는 특히 그렇다. 왜 그럴까 탐구한 적이 있는데, 아마 열심히 말할 필요 없이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옆에서 알아서 다 해결해주니까. 깎아놓은 밤톨 같은 남자아이가 버벅대면 대부분의 성장기 돌봄 노동자들은 예뻐라 한다. 조금 더 자라서는 과묵함으로 포장도 해준다. 잘생긴 남자가 말까지 잘한다면, 남다른 노력이 따랐을 것이다. 아님 업무상, 작업상 꼭 필요했거나.

인생은 공평하다. 밤톨도 언젠가는 자식을 기르거나 부모를 모시거나 조직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적어도 제 밥벌이는 해야 한다. 구애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하고 증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시기가 되면 말 못함은 제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된다.

타인을 위해 시간, 돈, 기운을 써본 적 없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에게 그리 해도 고마운 줄 모른다. 말주변 늘리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말을 많이 한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 어눌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말은 태도라서 그렇다. 관심과 집중의 결과랄까. 이런 간명한 이치를 모르는 왕자와 공주가 너무 많아서 우리는 종종 피곤하고 허탈하다.

여럿이 모이자고 호들갑만 떨고는 정작 약속 한번 앞장서 안 잡는 이는, 상황에 맞게 식당을 고르거나 예약할 줄 모른다. 밥값도 제대로 낼 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옆 사람의 삶은커녕 숟가락인들 제대로 챙겨주겠니. 이런 이들에겐 욕이라도 실컷 해야 맘이 편하다.

이른 나이에 허세 전 ‘엄친아’를 만나 개고생한 뒤로 만나는 사람마다 시험에 들었던 한 친구는 먼 나라로 제2의 삶을 살러 떠났다. 어딜 가든 유부남과 조미료는 조심하라 그리 당부했건만,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평안을 얻은 상대는 대가족을 거느린 목사님이다. 주일도 모자라 주중에도 교회와 사택 안팎의 각종 수발 노동으로 쉴 틈이 없다. 새해를 맞아 ‘상태 메시지’ 한가득 올라온 난해한 말씀들과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어쩜 사람은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었다. 왜 받아야 할 은혜를 몽땅 기미·잡티로 받는 거니. 풀썩.

성장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성숙은커녕 유지도 어렵다. 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하드코어 막장극으로 치닫는 이유가 등장인물들이 나이를 먹지 않아서라는 게 딸아이의 주장이다. 언제까지 12금 할 거냐며, 15금 정도는 해줘야 스토리에 발전이 있는 거 아니냐며. 음, 일리 있다. 재미는 있어야겠는데 노출과 피칠갑 수위는 지켜야 하니, 굳이 어린이가 알 필요 없는 신종 범죄 수법과 자극적인 사연을 등장시킨다.

낼모레면 마흔인 사람이 ‘어릴 적 형편 탓, 부모 탓’으로 자신을 설명하면 듣는 내가 다 무안하다. 그 나이가 되도록 성장기 배경 탓을 하면 오히려 가정과 부모까지 욕보이는 꼴이다. 입만 열면 함께 산 지 십수 년 된 파트너(와 그 집안)의 흉을 보는 이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긴 세월, 당신은 뭘 했길래.

누군가를 옆에 두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어느 정도 감당한다는 뜻이다. 책임이 따른다. 그런 면에서 나는 넓고 두터운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바다 같은 에너지원을 지닌 게 아니라면 철저히 자기중심적일 공산이 크다.

에너지는 오가야 한다. 늘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것 같다면, 만날 때마다 기 빨리는 느낌이라면, 그럼에도 코드를 뽑을 수 없는 사이라면, 방전을 막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절전형 모드 전환.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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