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기생을 주제로 한 책 두 권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출간됐다. 조선시대 후기 한량 한재락이 1820년대 평양에서 이름을 날린 기생 66명에 대해 기록한 와 그로부터 100여 년 뒤 “여성의 적인 남성들을 포로하려는 복수 전사의 일원이 되겠다”는 글을 기고한 기생 ‘화중선’을 모티브 삼아 1인칭 시점 소설 형식의 다.
두 책의 공통점은 기생을 서술하는 화자가 모두 ‘먹물 룸펜’이라는 데 있다. 개성 갑부 집안에서 태어난 한재락은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났지만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인지 집중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주변머리가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풍류를 즐기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랬다. 의 주인공 ‘나’ 또한 후일 잡지 편집장이 되기까진 병환 중의 어머니에게 갈 차비조차 없는 신세였다. 자타공인 ‘기방 전문가’였던 한재락은 기생 중에서도 으뜸으로 쳤던 평양 기생, 그중에서도 시·서·화, 가무에 뛰어난 이들을 골라 이들의 예술성과 용모, 매력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향옥은 부드럽고 포근하여 봄날과 같다” “초옥은 가는 허리가 한 줌에도 차지 않는다” “영주선은 봄날 난간에 기대어 서글픈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면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등등. 21세기 시각으로 보자면 남성 위주의 사고관이 다분하지만, 고위 관료·사대부 등 공식적으로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들만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던 당시의 관행에 비춰본다면 파격적이다.
의 시선은 심층적이다. “뭇 사내들은 내 신발에 입을 맞추라”(1921년 )고 도발한 기생 화중선의 글에 충격을 받은 ‘나’는 우연히 하룻밤 정을 나눴던 도도하고 아름다운 기생 ‘화홍’이 화중선일 거라는 심증을 가지고 각종 문헌자료를 섭렵하며 기생의 세계를 공부해나간다. ‘나’가 읽는 ‘기생 공부’의 텍스트는 의 지은이이자 근현대 대중문화 전문가인 김진송이 발굴하고 연구한 1920~30년대 풍속 자료다. 관비였던 기생들은 신분제를 폐지한 갑오경장 뒤 자유를 얻지만 포주의 노예가 되어가고, 친일파와 일본인들이 기생산업을 차지한 뒤 절에서까지 기생 영업을 벌인다. 그 밖에 책에는 김동인·현진건 등 기생을 다룬 당대 문인들의 작품과 각종 기고문, 방담 등이 등장한다. 가령 모윤숙·노천명·최정희 등 ‘신여성’들은 남성들과 별반 다름없는 시각으로 기생들을 천대했으며, 소설가 주요한은 기생 폐지를 위해선 남녀 교제를 장려해야 한다며 ‘한청산’이라는 필명으로 “오후 9시 이후에 혼자 다니는 남녀는 일주일 이상 구류에 처하는” 황당한 법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작가가 강조하려는 것은 기생이 ‘이중의 식민지’였다는 점이다. 봉건과 현대의 착종, 이식된 ‘모던’의 표피성, 식민지의 암울한 상황에 더해 기생들은 남성들의 위선과 이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기방을 드나들면서도 기생을 사회적 타락의 주범으로 몰아붙이고, 그러면서도 기생에게 황진이·논개와 같은 품위를 요구하는 모순은 “식민을 정당화했던 제국의 사회진화론이 그랬던 것처럼 봉건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조선 사회의 가장 혼란된 의식을 보여”준다. 이것이 작가의 결론이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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