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여성팬티를 입을 수 없는 모미(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kong********)
남성팬티를 입어보니 너무 좋아서 다시 여성팬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한 여성의 트윗이다. 지난 7월 말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남성팬티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들이 남성팬티에 열광하는 지점은 여성팬티가 맵시만 신경 쓸 뿐, 비싸기만 하고 질이 떨어진다는 혐의에서 비롯됐다. 혐의는 남성팬티를 입었더니 세상 편하고 좋더라는 여성들의 ‘간증글’이 수백, 수천 개 리트윗되면서 ‘확증’됐다. 여기에 여성팬티의 불편함을 집중 문제 제기하는 계정까지 생기면서 SNS에 남성팬티가 주요 검색어로 떠올랐다. 디자인도 핑크·레이스·리본·꽃무늬 등 스테레오타입인데다, 사용 뒤 아토피나 음부 질환이 악화됐다는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팬티에서 비롯된 분노는 면도기, 니플밴드(유두 가리개), 화장품, 미용실 가격 등 여성이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남성용 면도기가 여성용보다 훨씬 잘 깎인다는 경험담도 많았다. 비싼 여성 니플밴드 대신 남성용을 구매하라는 조언과 남성용 화장품의 가성비가 더 낫다는 후기도 잇따랐다. 여성의 쇼트커트 비용이 남성보다 더 비싸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한국판 ‘핑크 택스’(Pink Tax)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미국, 성에 따른 가격차별금지법 제정</font></font>핑크 택스는 여성용 제품이 남성용보다 더 비싸거나 질이 낮은 현상을 뜻한다.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2015년 미국 뉴욕시소비자보호부는 미국 내 유통되는 35개 품목, 800개 제품을 조사해 가격 면에서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평균 7%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기능 면에서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여성용이라는 이유로 가격 차이가 났다는 얘기다.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성에 따른 가격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뒤 프랑스·영국·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제기되거나 관련 시위가 활발히 이어졌다.
한국에서 핑크 택스는 어느 정도일까. 논란이 된 제품들을 직접 사용해봤다. 팬티는 후기가 가장 많았던 ○브랜드(남성용 1장, 여성용 2장)를 구입했다. 남성용은 앞섶이 막힌 복서팬티(M사이즈, 엉덩이 둘레 85~92cm)를, 여성용은 누리꾼 사이에 악명 높은 짧은 복서팬티와 다리·허리 부분이 레이스로 마감된 일반 팬티(M사이즈)를 샀다.
먼저 눈에 띈 건 가격 차이였다. 유명 스파(SPA·제품 기획부터 유통까지 한곳에서 담당) 브랜드 세 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팬티의 개당 가격을 알아봤다. 브랜드별 통계를 내보니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4~45% 비쌌다(유니클로 4%, 에잇세컨즈 15%, H&M 45%). 몇몇 제품에선 남성팬티가 더 비싼 경우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여성팬티가 더 비싸다는 여성들의 불만은 일정 부분 사실로 보였다.
착용감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여성팬티의 다리 사이 쪽 불편함은 적어도 남성팬티에서 느낄 수 없었다. 넉넉한 앞섶이 주는 편안함은 여성팬티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신세계’였다. 몸에 붙는 바지를 입었는데 티가 별로 나지 않아 좋았다. 여성팬티에 비해 통풍도 잘됐다. 다만 마른 체형인데도 M사이즈의 밴드 부분이 꽉 조여 불편한 점은 아쉬웠다.
이번엔 여성팬티. 짧은 복서팬티는 십자 모양의 굵은 봉제선이 다리 사이를 옥죄었다. 레이스로 된 여성팬티는 입자마자 까슬까슬함 때문에 못 견디고 벗었다. 여성팬티가 주는 불편함은 여성 신체를 고려하지 못한 디자인 탓인 듯싶다. 여성팬티의 다리 사이 부분은 보통 좁고 평면이다. 입으면 원단이 허벅지와 허리 쪽으로 팽팽히 당겨져 오목해진다. 여성의 다리 사이는 굴곡이 있어 자칫 T팬티가 되기 쉽다. 레이스까지 달리면 고문 기구가 된다. 결국 여성팬티의 다리 사이 쪽 공간이 여유로워야 하는데, 대부분 과도하게 밀착돼 여성들이 고통을 호소한 것이다. 여성들의 불만은 품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가짓수에서도 여성팬티는 남성팬티보다 선택의 폭이 좁았다. 한 유명 의류업체에서 출시한 기능성 팬티 중 남성용은 13종인 데 비해 여성용은 1종이라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마케팅의 일환 vs 제품 선택권</font></font>여성들의 불만이 집중된 니플밴드의 가격 차별도 확인했다. 팬티에 비해 니플밴드는 핑크 택스 현상이 더 확연했다. 생활용품점의 니플밴드는 같은 제조회사에 같은 가격임에도 남성용 6개입, 여성용 2개입으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여성용은 남성용보다 지름이 2cm 큰데다 꽃모양 디테일이 추가됐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부착력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여성의 평균 유륜이 더 큰 것을 고려해도 성별 구분만이 아닌 패치 크기를 다양화하면 더 좋지 않을까. 드러그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니플밴드의 가격차는 더 컸다. D사와 N사의 남성용 니플밴드 개당 가격은 각각 150원, 219원인데, H사의 여성용 일반 니플밴드와 레이스자수 니플밴드가 각각 400원, 667원으로 두세 배 비쌌다. 역시 여성용은 꽃모양이나 크기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기능보다 디자인에 치중했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레이스자수가 있는 니플밴드는 되레 얇은 티셔츠에 사용하지 못하는 등 옷 선택에 제약을 줬다.
남녀 눈썹칼도 비교했다. 가격은 여성용품이 비쌌지만(개당 1500원>1250원) 그만큼 부드럽게 더 잘 깎였다. 시장의 수요에 품질이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래도 여성들의 구매가 더 많기 때문에 여성용 눈썹칼이 남성용보다 더 품질 개발이 이뤄졌을 것이다.
화장품의 경우, 남성용은 단일 상품이 많은 반면 여성용은 스킨로션은 기본이고 아이크림·넥크림·오일·세럼 등으로 세분화돼 일괄 비교가 어려웠다. 화장품의 남녀 구분은 피부 차이에서 오는 걸까? 의 공동저자 정인씨는 마케팅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8월8일 과의 통화에서 “남녀 화장품은 성분 차이가 전혀 없다. 사람 피부에 맞는 성분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성별보다 건·지성 등 피부 타입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남녀 화장품의 가격 차이에 대해 “성분 차이가 없더라도 용기나 광고비 등에서 차이 난다. 그것도 마케팅의 일환이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68혁명 당시 가터벨트를 벗었듯 </font></font>핑크 택스에 대한 업계의 반론도 만만찮다. 미용에 더 관심 많은 여성이 지불할 의사가 더 크고, 기업은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할 뿐 문제없다는 것이다. 유명 스파 브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가격은 소재, 기능성 등 다양한 요소에 기반해 결정한다”며 “가격 책정시 성별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소비자학)도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연구 자료가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별에 따른 가격 차이만을 가지고 핑크 택스 현상이라 확언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핑크 택스는 까탈스러운(?) 여성들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불과할까. 핑크 택스 여부를 떠나 여성들이 대체재로서 남성제품을 애용하는 현상은 지속될 것임은 분명하다. 남성제품 선호에는 여성이 놓인 ‘선택의 제약’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얼마 전 나이키 주최 마라톤대회에서 제공된 여성 운동복에 아예 L사이즈가 없어 논란이 됐던 일이나, 국내 의류업체의 60%가 S사이즈까지만 제작하는 사례는 여성의 제품 선택권이 생각만큼 넓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보와 언어 장벽이 있음에도 여성제품을 해외 직구하는 여성이 많아지는 이유다.
여성들이 남성용품을 대체재로 사용하는 현상은 가부장제 사회가 강제한 ‘미용 압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의 발현은 아닐까. 남성의 시선에 복무하는 억압적인 팬티를 벗고 편하고 자유로운 팬티를 입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최근 여성들이 와이어 브래지어를 벗어던졌듯, 그보다 앞선 68혁명 당시 코르셋과 가터벨트를 벗어던졌듯. 결론을 말하면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이왕이면 남성팬티’다. 언니들아, 남자팬티를 입자.
<font color="#008ABD">글</font> 도우리 교육연수생 wrdoh@daum.net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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