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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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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술 한잔 손에 들고

62가지 일상의 미각 소개하는 <어른의 맛>
등록 2016-10-05 23:31 수정 2020-05-03 04:28

모음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듯, 몸으로 삶의 언어를 배운다. 감각으로. 눈, 코, 귀, 혀, 살. 이 가운데 혀의 미각은 가장 ‘가까운’ 감각이다. 멀리 있는 맛은 느낄 수 없다. 미각은 촉각보다도 직접적이고 친하다. 미각은 몸속으로 아예 들어오니까. 미각의 매개물인 음식은 복잡한 화학물질이며, 뇌는 화학단지다.

또한 미각은 성감각과 밀접하다. 입은 먹고, 말하고, 키스할 때 쓰인다. 입술, 혀, 생식기에는 ‘크라우제 종말’(Krause’s end bulb)이라는 신경수용기가 공통적으로 있다. 맛과 성에 대한 비슷한 반응에 과학적 어처구니가 없진 않은 것. ‘미(味)각’을 뜻하는 영단어 ‘taste’는 ‘미(美)각’이란 뜻도 둔다. ‘입맛이 쓰다, 입맛에 맞다, 입맛을 다시다’ 같은 관용표현에서 보듯 미각은 취향, 의견, 소망, 심미안을 상징하는 센스다. 미각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

지난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히라마쓰 요코의 는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레시피를 보여줬다. 평범한 식재료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의 깊이에 생각을 담그고 나면, 집밥은 뭉클한 성찬이 되곤 했다. 이번에 나온 (히라마쓰 요코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은 62가지 맛을 소개한다. 잘 익은 맛, 여운이 남는 맛, 혼자의 맛, 깨끗한 맛, 비의 맛, 강의 맛, 여자의 맛, 남자의 맛, 물의 맛, 더위가 가시는 맛, 저녁 반주의 맛, 기다리는 맛, 초겨울의 맛, 한 사람 몫의 맛, 눈물 나는 맛, 냄새의 맛, 한 해의 끝 맛…. 재료를 섞어 새로운 맛을 만드는 기분으로, 내가 원하는 맛끼리 버무려 읽어봤다.

혼자의 맛+저녁 반주의 맛. “애초에 서서 술을 마시는 것은 혼자 하는 게 어울린다. 마시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불쑥, 입이 심심해서 무의식중에, 충동적인 기분도 어깨 근처에 달라붙어 있다. 이유 따위는 필요 없다. 무뢰한 감각이야말로 서서 마시는 술이 주는 기쁨이다.” “컵술 한잔을 손에 들고 안주는 한두 가지. 적당히 마시고 담박하게 끝낸다. 질질 끌지 않고 자신의 만족과 적당히 타협한다.”

눈물 나는 맛엔 매운맛이 있다. 어릴 때 무심코 먹고 한번쯤 찔끔 울었을 “와사비와 고추는 매운맛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 고추의 캡사이신은 불휘발성이라 미각에 직접 반응한다. 그래서 매운맛의 허용 범위가 조금씩 넓어져 점점 그 맛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와사비의 매운맛은 휘발성이다.” 또 어떤 눈물맛.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렸을 때 먹었던 엄마의 맛”. 한국의 눈물맛 음식으론 홍어가 있다. 홍어를 먹으면 많이 울고 코 풀 때 코끝에서 나는 냄새와 맛이 난다. 서럽고 텁텁하고 약간 맵싸한 그. 특별히 지은이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물임을 배우고 물의 맛을 긴히 전한다. 식재료로서의 물이다. “무색투명한 물이 모든 요리의 근간을 쥐고 있으며 물은 최고의 양념”이라는, “깨끗하고 개성 있는 물은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깨끗한 맛을 표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재료”라는 믿음에 설득된다면, 일상예술은 미각을 통해 한층 여문다. 더 소박한 것이 더 본질적이고, 더 본질적인 것이 더 결정적인 쪽으로.

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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