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해가 잘 안 돼도 계속 본다는 점에서, 시 읽기와 사랑은 닮았다. 눈을 뜨고 보는 일의 찬란 앞에 어떻게 보는지는 부차적이란 점에서. ‘감각하다’의 뜻은 ‘믿는다’일지 모른다. 좋은 예술을 많이 누릴수록 믿음이 붙는다. 내게 의미 있는 무엇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믿음. 좋은 예술은 감상자가 머물러 감각하도록 만든다. 머무는 시간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좋은 예술은 모두 음악적이다. 머무른 공간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예술은 모두 미술적이다.
고전이 그러하다. ‘현대의 고전’ 중 하나인 파블로 네루다의 대표작 (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완역 출간됐다. 밤마다 시를 읽었다는 체 게바라가 게릴라 부대원들에게 들려준 시로도 알려진다. 조국 칠레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태고로부터 상상력을 빨아올려 이베리아반도 국가들에 당한 식민지배와 독립, 이어진 독재와 민중의 저항을 15부 252편으로 증언한다. 호메로스의 , 프랑스 최고(最古)의 무훈시 , 스페인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무훈시 , 독일의 가장 유명한 무훈시 의 맥을 잇는 현대판 대서사시다.
네루다가 별세한 1973년,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그리스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해 망명지에서 몇 수에 곡을 붙였다. 1975년 발매된 오라토리오 형식의 앨범인데, 네루다도 에 오라토리오 등 악곡과 대중·민중 가요 양식을 도입해뒀다. 2004 아테네올림픽 시상식 때 찬가로도 쓰였다. 유럽이 식민지 삼은 중남미의 웅혼이 유럽의 민주정신을 전율시킨 이야기. (참고로 앤서니 퀸이 주연한 미카엘 카코야니스의 (1964) 영화음악이 테오도라키스 사운드다.)
‘찾아 읽는’ 댓글시인 제페토의 6년치 댓글 모음 (수오서재 펴냄). “나는 다른 책들이 나를 가두도록 글을 쓰지 않고, (…) 대신 물과 달, 바꿀 수 없는 질서의 요소들,/ 학교, 빵과 포도주, 기타와 연장이 필요한/ 소박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 민중을 위해 글을 쓴다”는 네루다가 선창한 ‘모두의 노래’에 화답하는 시집이다.
2010년 9월7일 새벽 2시. 한 철강업체에서 20대 청년이 1600도 넘는 용광로에 빠져 사망했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 바늘도 만들지 마라”라고 명하는 제페토의 시에 많은 이가 감응했다. “여간해선 뒤집어지지 않는 삼각형 구조의 세상”(제페토)을 향해 같이 “마음에 칼을 매달”(네루다)았다. 댓글시는 온라인 시대에 나타난 다소 낯설 수 있는 현대의 시형이나 도 도, 당시엔 현대시였다.
시는 자연, 인물, 사건에 깃든 의미와 정신을 낱낱이 소포장해 후세에 전해줬다. 그것도 아름답게. 미(aesthetic)의 반대는 추가 아니라 무감각(anaesthetic)이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마비된 이성과 감성이 깨어난다. 시를 읽는 시간, 때론 무참하도록 이해하기 힘든 세계를 여전히 사랑하는 시간.
석진희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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