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치매였다. ‘서촌 여대생 살인 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서재혁(전광렬)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해 범인으로 몰리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기억천재였다.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절대기억의 소유자인 서진우(유승호)는 아버지 재혁의 누명을 벗기려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살인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사건의 배후에는 국내 최대 재벌기업의 막강한 권력이 버티고 있었다.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은 직접 변호인이 되어 권력과의 전쟁을 벌이려 한다.
현재 가파른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며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수목드라마 (이하 )의 주 내용이다. 영화 의 각본을 맡았던 윤현호 작가의 후속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진작부터 화제를 모았던 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거대 권력에 맞서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은 진실과 기억에 관한 것이다. 두 작품이 겨냥하는 것은 시대적 배경의 삼십 년 시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권력자들에 의해 진실이 왜곡, 편집되고 그에 대한 침묵과 망각이 강요되는 현실이다. 조작된 진술과 협박이 난무하는 두 작품 속 법정 풍경은 너무도 유사하다.
이러한 현실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가능성은 개개인이 기억하는 진실에 있다. 아무리 강한 권력이라도 모든 기억을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 내부고발자 윤 중위(심희섭)가 그러했던 것처럼 에서도 차마 양심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이들의 기억과 증언은 고비 때마다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개개인의 기억은 뭉칠 때 한층 큰 힘을 발휘한다. 가령 이 1987년을 에필로그의 시점으로 택한 것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장 강렬했던 집단기억을 소환하면서 점점 왜곡되어가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를 다시 환기시키고자 함이었다.
는 이 ‘기억의 연대’라는 주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주인공 서진우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결코 혼자서는 조작된 진실을 바로잡지 못한다. 권력이 은폐한 진실은 그가 아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이를 다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억들과의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연성은 진우가 앓고 있는 ‘과잉기억증후군’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과잉기억증후군은 자신의 경험만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일종의 자서전적 질환이다. 전부를 기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 기억이기에 다양한 각도의 기억이 보완되어야만 진실에 최대한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작품 제목인 의 의미도 더욱 확장될 수 있다. ‘리멤버’(re-member)라는 말은 ‘다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즉, 기억에는 이미 사회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진우가 그의 절대기억 능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다른 이들과 협력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권력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기억의 공동체적 힘을 드러낸다. 권력이 갈수록 집단망각을 강요하며 진실을 편집하고 왜곡하는 이 시대에 기억의 연대가 새삼 중요해지는 이유를 는 잘 보여주고 있다.
김선영 TV평론가※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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