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트렌드의 키워드는 ‘플랜 Z’라는 전망이 나왔다. 김난도 교수 등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전망이다. 플랜 Z는 플랜 A(최선)·B(차선)로도 안 될 때 취하는 ‘최후의 전략’이다. 저성장·고용 불안·양극화로 인해 불황을 겪는 사람들이 그래도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역설 속에서 적게 쓰고 크게 만족하는 ‘우아한 서바이벌’ 전략이 바로 플랜 Z다.
김난도 교수팀이 2016년을 전망하는 키워드들을 꼽은 책 은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다. 연말이면 그해에 나온 가 베스트셀러 수위권을 차지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에 트렌드 책 서가가 마련되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2016년은 ‘우아한 생존 전략’이 흥할 것플랜 Z의 생존 전략은 B급 상품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이미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최대 70%까지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이 늘어나고 있다. 10g 미만의 상품성이 없는 전복을 묶은 ‘라면용 전복’과 일반 한라봉 크기의 40~50% 수준인 ‘꼬마 한라봉’ 판매도 꾸준하다. 흠집이 있거나 반품된 상품을 40~70% 할인하는 리퍼브(refurb) 매장 역시 연일 붐빈다. 이러한 B급 상품을 잘 사는 것이 플랜 Z의 첫째 전략이다.
집구석을 힐링 공간으로 삼는 법도 있다. 어른 버전의 색칠공부 책인 컬러링북, 크기가 작은 장난감 블록인 나노블록 등이 집 안 구석구석을 놀이터로 만들었다. 집에서 놀면 당연히 돈이 적게 든다. 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셰프들의 요리 꿀팁을 실천하는 것도 ‘우아한 서바이벌 레시피’가 된다.
김난도 교수팀은 이 외에 ‘있어빌리티: SNS를 통해 취향과 인맥과 센스를 과시하는 능력’(‘있다’와 ‘영단어 능력(ability)의 합성어), ‘브랜드의 몰락, 가성비의 약진’, ‘연극적 개념소비: 과시와 놀이가 된 착한 소비’ 등 10가지를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다.
이렇게 2016년의 경향성을 전망하는 트렌드 도서들은 2013년께부터 세분화됐다. 3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는 생활·문화 분야의 트렌드만을 분석·전망한다. 2014년의 키워드로 불황에도 계속되는 ‘프리미엄 소비’, 2015년 키워드로 ‘SNS 속 가면 쓰는 사람들’을 꼽았다. 실제로 올해는 ‘가면’을 쓰고 실력만으로 승부한 노래경연 예능 프로그램 이 인기를 모았다.
은 내년의 키워드로 ‘취향’을 꼽았다. 혁오밴드가 뜨자 오히려 애통해할 정도로 ‘취향의 배타성’을 지키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취향을 좇는 사람들이 대세가 될 거라는 얘기다. 올해는 교육컨설턴트가 교육계 트렌드만을 분석한 이 나오기도 했다. 뚜껑을 열면 ‘국어교육이 뜬다’ ‘자유학기제로 진로를 탐색한다’ 등 김 빠지는 내용이다.
박태근 온라인서점 알라딘 인문 분야 MD는 “트렌드라고 하면 예전에는 대기업 등이 ‘이게 트렌드’라고 홍보·설명하는 하향식이었다면 요즘은 다품종·소량화 되는 추세다. 다만, 미래의 일인 것 같지만 읽어보면 대부분 올해 일어난 일을 토대로 분석하는 내용이어서 읽는 사람들도 정보를 확인하는 차원이지 새로운 발견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는 트렌드 서적은 이미 일어난 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해설서에 가깝다. 에서 전망하는 2016년 트렌드 키워드의 근거는 모두 2015년에 일어난 현상들이다. 김난도 교수와 함께 2016년 트렌드 분석 작업을 한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는 예측이라기보다 분석에 가깝다. 2015년에 있었던 일을 근거로 삼아 5년, 10년 뒤라는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그 경향성이 확대될 부분들을 설명하고 그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담는 해설서다”라고 말했다.
현실을 분석하되 그 분석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고 조언하는’ 트렌드 서적들은 왜 잘 팔릴까.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자영업자가 많고 자영업자의 꿈을 가진 인구가 많은 독특한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2013년 기준 한국의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2.5%로 미국(6.5%), 일본(8.8%), 독일(10.7%), 영국(14.2%)에 비해 2~3배 높다(산업연구원). 이택광 교수는 “자영업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자본화하는 일이다.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고 더 많은 트렌드를 먼저 알기 위해 트렌드 서적을 읽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욕망하는 자, 자신의 자본화에 관심 있는 자가 타깃이라는 얘기다.
트렌드 서적들은 정확히 그들을 겨냥한다. 의 홍보 포인트는 “강남맘, 대치맘, 목동맘을 움직이는 떠오르는 교육계 최신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전세계 주재원들의 글을 취합한 는 “새로운 마케팅을 고민하는 비즈니스맨, 창업을 꿈꾸는 예비 기업가(중략)에게 작은 영감이라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고 썼다. 이택광 교수는 “이 꼽은 키워드 ‘플랜 Z’와 ‘있어빌리티’를 보면 그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가 보인다. 상위 1%가 아니라 ‘상위 1%가 되고픈 사람들’이 그 대상”이라고 짚었다. ‘라면용 전복’을 사면서 각종 꿀팁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결국 구매력이 적당히 혹은 아쉽게 있는 서민들이다.
“문제적 현실에 순응하게 할 뿐”트렌드 서적들은 위기 자체를 전환하려는 의지는 없다. 위기 속에서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팁을 준다. “문제적 현실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고 순응하게 한다.”(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그러나 그 팁은 착시효과로 인해 효용을 상실한 팁이다.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트렌드 서적이 주목하는 키워드들은 생존 전략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팁은 결국 ‘욕망하는 당신’을 분석해서 나온 팁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사실을 우리 함께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팀이 를 낸 지 7년째다. 이 책은 ‘트렌드서 열풍’을 사실상 주도했다. 그에 맞게 책임감도 있다. 지난해 전망한 키워드들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책 절반에 걸쳐 검증한다. 2015년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도 뽑는다. 특이점은 ‘트렌드 상품’ 후보군에 상품뿐만 아니라 인물·이벤트·사건·서비스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상품 선정 기준에는 정성적 기준과 정량적 기준이 섞여 있다. 2016년 트렌드 분석을 위해 모인 ‘트렌더스 날’ 회원 119명이 추천한 126개 후보 제품을 확보한 뒤 온·오프라인 쇼핑몰, 홈쇼핑 등에서 집계한 판매량과 관련 언론 기사를 토대로 51개 후보 제품을 선정한다. 이후 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2447명에게 설문조사를 한다. 이 자료를 토대로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들의 토론·심사를 거쳐 10개의 ‘2015 트렌드 상품’이 최종적으로 뽑힌다. 2015년의 경향성을 짚어볼 수 있는 상품들 가운데 7가지를 소개한다.
1. 단맛 허니버터칩과 과일맛 소주. 일시적 불황에는 매운 맛, 장기적 불황에는 단맛이 나는 ‘위안 음식’(comfort food)에 끌린다.
2. 마스크와 손소독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소비가 얼어붙은 2015년 6월, 유일하게 품귀 현상을 빚은 제품들. 한 해외배송 업체에 따르면 마스크·세정제 주문 건수가 전월 대비 2570% 증가했다.
3. 출연 가수가 복면을 쓰고 나와 ‘스펙’(외모, 인지도, 나이 등)에 해당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실력’(노래)만으로 평가한다는 취지의 예능 프로그램. 스펙과 배경을 중요시하는 ‘금수저’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해석이다.
4. 셀카봉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자기과시가 일상화된 시대적 조류 속에서 ‘현실 자아’를 ‘가능 자아’로 포장해주는 셀카를 잘 찍게 해주는 도구다.
5. 셰프테이너 예능하는 셰프들이 재미와 요리 꿀팁을 무료로 선물한다.
6. 소형 스포츠실용차(SUV) 티볼리·QM3 등의 선전은 남성 위주의 시장에서 여성의 구매력이 상승하는 ‘이브올루션’(이브(Eve)의 혁명(Revolution)) 현상으로 나타났다.
7. 저가 중국 전자제품 ‘대륙의 실수’라는 샤오미의 보조배터리를 시작으로 저가 중국 제품이 열풍을 일으켰다. 브랜드보다 가격을 중시하는 불황 속 소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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