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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좌파 하비, 자본 자체의 속성을 파고들다
등록 2015-07-25 13:37 수정 2020-05-03 09:54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가.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많은 일을 손쉽게 더 빨리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는 왜 더 바빠졌는가.

<자본의 17가지 모순> 동녘 펴냄. 데이비드 하비 지음. 황성원 옮김. 1만9800원.

<자본의 17가지 모순> 동녘 펴냄. 데이비드 하비 지음. 황성원 옮김. 1만9800원.

사용가치 중심으로 체제를 다시 짜야

80살의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본이 우리를 돈의 노예로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쓰고 버리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노동자 다수는 갈수록 과시적 소비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면서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고 있다.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인위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이들은 과도한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기술 덕분에 충분히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자신의 전공인 지리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목해 공간의 정치경제학을 개척한 세계적 비판 지성인 하비의 은 신자유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자본 그 자체의 속성과 본질을 파고드는 보기 드문 저작이다.

하비는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좌파다. 예를 들어 그는 기존 좌파들이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장이나 노동시장에서의 투쟁에 집중하느라 더 중요하고 커다란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소득의 약 3분의 1을 주택에 지출한다. (…) 노동이 아무리 노동시장과 생산의 지점에서 전투에서 승리하여 임금에 대한 상당한 권리를 획득하더라도, 이 성과의 대부분을 주택을 구입하는 데 다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다. (…) 사용가치로서 노동이 생산 영역에서 획득한 것을 지주, 상인(가령 전화회사), 은행(가령 신용카드), 변호사와 거간꾼들에게 다시 빼앗기고, 그 나머지 중 큰 덩어리는 세무 당국에게 가게 되는 것이다.”

하비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경제학 개념을 제시하면서, 사용가치를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새로 짜야 한다고 역설한다. “생산을 위한 생산이라는 쳇바퀴를 돌려 조증에 걸린 듯 들뜨고 소외된 소비주의라는 강압의 세계를 유지하는 대신, 만인이 적절한 물질적 생활수준에 이르는 데 필요한 사용가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합리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잉여가치의) 실현은 필요 중심의 수요로 전환되고 생산은 여기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불어 부동산 권력을 해체하고, 불로소득계급의 능력을 억제할 것, “(국제통화기금처럼) 미국의 달러 제국주의를 지원하기 위한 (…) 모든 국제화폐기관들을 해체”할 것 등 혁명 과제를 쏟아낸다.

시간의 노역에서 해방된 개인, 그 ‘위험’

다시 ‘시간’으로 돌아오자. 무엇보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싫어한다고 하비는 말한다. “소비를 도와주는 (전자 은행업무와 신용카드,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전자레인지, 세탁건조기, 진공청소기 등과 같은) 노동·시간 절감 기술의 은총을 입어 생산의 노역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결사와 자기 창조에 능한 개인들이 비자본주의적 대안 세상을 건설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는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자, 이제부터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보자. 소비를 줄이고, 책을 읽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재성 문화부 책지성팀장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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