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 남짓한 시골 양반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소설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돈키호테라는 이름의 편력 기사가 되어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에 나선다. 출분 첫날 저녁 성으로 알고 투숙한 객줏집에서 운 나쁜 마부들을 때려눕히고 엉터리 기사 서품식을 치른 그는 이튿날 길을 가다 주인한테 매질을 당하던 어린 하인을 구하는 것으로 첫 번째 기사도를 행하지만, 또 다른 편력 기사들로 오해한 상인들과 시비 끝에 큰 부상을 입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보름 동안 집에서 몸을 추스른 그는 이웃에 사는 농부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삼아 두 번째 출분을 한다. 저 유명한 풍차 사건을 포함해 갖은 모험을 겪고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 돈키호테는 마을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가 꾸민 계략에 속아 우리에 갇히고 소달구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그것으로 1권은 끝이 난다.
1권 말미에는 “돈키호테는 세 번째로 집을 나갔을 때 사라고사로 가서 그곳에서 벌어진 유명한 몇몇 무술 경연 대회에 참가했으며 거기서 그의 용기와 분별력에 어울리는 사건들을 겪었다는 소문”이 소개되는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름으로 1614년에 나온 이라는 책에서는 실제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사라고사로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2권에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예정됐던 사라고사가 아닌 바르셀로나로 보내 이런저런 모험을 겪게 하며 그 모험의 끝에 돈키호테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숨을 거두는 것으로 그린다. 두 주인공이 사라고사가 아닌 바르셀로나로 간 것과 함께 결국 돈키호테를 숨지게 하는 설정은 그가 ‘가짜 속편’을 크게 의식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2권은 텍스트와 현실의 관계에 관한 다수의 흥미로운 논점을 담고 있다. 1권을 읽은 사람들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는데다, ‘가짜 속편’까지 나와 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그릇된 정보도 사실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 2권의 상황. 두 주인공은 현실의 모험에 임하는 한편 자신들에 관한 사람들의 이해와 오해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된다. 가 ‘근대소설의 효시’(알베르 티보데)로 일컬어지는 까닭을 텍스트의 이런 현대성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세속에 맞서는 ‘꿈과 이상’“내 소원은 다름 아닌, 기사도 책에 나오는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사람들로 하여금 증오하도록 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기사도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품고 엉뚱한 사건을 벌이다가 집에 돌아온 알론소 키하노가 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와 고해와 공증을 마치고 숨을 거둔 뒤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쓴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 소설에서 돈키호테가 표방하는 기사도의 낭만적 가치는 가령 2권에서 주요 인물로 나오는 공작 부부의 이성적이고 세속적인 가치에 맞서는 ‘꿈과 이상’으로서 현실 비판적 의미를 획득하게도 된다. 여기에다가 ‘광인’ 돈키호테를 앞세워 당대 계급 질서와 종교의 억압 등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대목을 읽다보면 이 소설을 가리켜 ‘인류의 바이블’이라 한 생트뵈브의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최재봉 문화부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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