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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파 시리즈가 된 ‘세월호’

김탁환 네 번째 시리즈 <목격자들>, 조운선 사건 통해 세월호 사건 면면을 기억해내
등록 2015-07-24 19:46 수정 2020-05-03 09:54

김탁환의 소설 은 (2007) 이후 8년 만에 재개된, ‘백탑파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다. (2003)에서 시작해 (2005)을 거쳐 이어져온 이 시리즈는 지금 탑골공원 자리에 있던 원각사의 하얀 대리석 탑을 중심으로 교유했던 18세기 한양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허구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추리물이다. 박제가, 박지원, 홍대용, 유득공, 이덕무, 김홍도, 이서구 등 일대를 풍미한 걸물들 그리고 탐정 김진과 의금부 도사 이명방 같은 허구적 인물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계 풍경을 되살려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목격자들> 1, 2권. 민음사 펴냄. 김탁환 지음. 각 권 1만3천원.

<목격자들> 1, 2권. 민음사 펴냄. 김탁환 지음. 각 권 1만3천원.

유병언의 죽음, 세월호 유족의 삼보일배…

은 정조 집권 초기인 1780년 봄 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을 싣고 한양으로 향하던 조운선 20척이 비슷한 시기에 침몰한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임금의 직속 지휘를 받는 독운어사로 임명된 담헌 홍대용과 그 제자인 김진, 이명방은 침몰 사건이 일어난 전라도 영암과 배가 출발했던 경상도 밀양으로 급파돼 사건의 내막을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단순 사고로 위장한 사건의 검은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사건 관련자와 수사 담당자들이 잇따라 살해되는 추가 사건이 벌어진다.

“이렇게 썩었을 줄은 몰랐네. 나라 전체가 푹푹 썩은 배로군.”

1권 말미쯤에서 조운선 침몰 사건 뒤에 도사린 부패의 연쇄고리를 확인한 김진은 이렇게 탄식한다. 세월호 사건을 다룬 여러 사람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지적을 상기시킨다. 2권에서는 사건을 을 믿는 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려는 범인들이 ‘정감록 무리’의 수괴로 지목한 도목수 선풍의 육탈한 주검이 발견되는 삽화가 나온다. 선풍은 침몰한 조운선의 불법 증축을 주도한 인물. 주검 아래 풀이 썩거나 말라붙지 않고 멀쩡한 상태임을 근거로 그가 다른 곳에서 살해되었다가 발견 장소로 옮겨졌음을 알아내는 김진의 추리는 세월호 실소유주인 세모그룹 창업주 유병언의 주검 발견 정황을 둘러싼 논란을 연상시킨다.

조운선이 침몰할 때 인근을 항해하던 어선 역시 가라앉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은 몰살되다시피 했다. 그때 희생된 아홉 살짜리 아이 차돌이의 어미 선영은 밀양에서부터 영암을 거쳐 한양까지 맨발로 걸어와서는 신문고를 두드리다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역시 세월호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고통스러운 삼보일배 행진을 떠오르게 하는 설정이다.

열다섯의 이름 읊으며 ‘잊지 않겠습니다’

조선 조운선과 세월호의 유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건의 배후가 드러나고 범인들이 색출된 뒤 이명방은 정조 임금과 독대한 자리에서 소맷속 서찰 하나를 꺼내 읽는다. 조운선 사건 때 함께 희생된 기생과 뱃사람, 어부 등 민간인 열다섯의 이름과 짧은 행적이 적힌 글이다. 의 세월호 희생자 기획 ‘잊지 않겠습니다’를 떠오르게 하는 이 장면의 취지를 이명방은 이렇게 풀어 쓴다. 작가의 생각이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이 세월 속에서 차츰 잊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소 신료가 모인 자리에서, 전하께서 그 이름들을 기리고, 사관이 기록하여 역사에 영원히 남기를 바랐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국가에서 그들의 이름을 공식 문서에 기록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억울함을 푸는 시작이라고 믿었다.”

최재봉 문화부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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