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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간을 지킬 것인가

등록 2015-07-25 14:07 수정 2020-05-03 09:54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집 에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시간을 사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언급한 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유행한다는 ‘폰 스택’(Phone Stack)이라는 게임을 소개한다. 식당에 모여 식사할 때 각자의 휴대전화를 한가운데 쌓아놓고는 먼저 폰에 손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좋게 보면 스마트폰 말고 대화에 집중하자는 취지일 수 있지만, 이건 일종의 파워게임이라고 김영하는 말한다. 휴대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이른바 ‘갑’일 확률이 높다. 사회적 위치가 곤궁할수록 휴대전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더 나쁜 방향으로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부자가 한국의 가난한 젊은이에게 직접 시간 쿠폰을 살 필요는 없다. 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
김영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읽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 또한 시간을 앗아가는 미디어지만, 독서는 시간과 지혜 또는 통찰을 맞바꾸는 교환 행위다. 무엇보다 책읽기는 가장 적극적인 정신활동이며 가장 고급한 미디어 소비 행위다.
책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가구이기도 하다. 거실에 책을 꽂아놓고 제목만 보는 것도 일종의 독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나의 개똥철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준 사람이 일본의 진보적 사상가 가토 슈이치(1919~2008)다. 그는 ‘읽는 법’보다 ‘읽지 않는 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우충동(汗牛充棟·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내고 집 안에 쌓으면 대들보에 닿을 만큼 책을 많이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책이 많은 장서가도 그 많은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읽지 않았더라도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 줄만 제대로 알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읽게 된다.
가토 슈이치의 이라는 책은 1962년에 나온 것이지만 지금 봐도 전복적인 주장이 많다. 가령 독서하기 가장 좋은 공간은 침대이며, 가장 좋은 자세는 누워서 보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렇다. 평소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던 나는 일말의 죄책감(책에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같은 게 없지 않았는데 가토 슈이치의 말에 큰 위안을 얻었다. 그는 책을 읽다 잠이 드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심지어 독서가 잠자기와 비슷하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지금도 대형 도서관의 조용한 열람실에 가보라. 거기 있는 사람들은 태반은 책을 읽고 태반은 자고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독서와 수면의 밀접한 관계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금이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아예 잠자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안성맞춤 아닐까?”
지난 1년 동안 지면에서 소개한 책 가운데 10권의 대표작을 뽑아 소개한다.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침대맡에 두시길.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드는 행위만으로 당신은 이미 부자가 된 것이다.
이재성 문화부 책지성팀장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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