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I speak to Fuzon Chung?” “Hold on, please.”
2008년에 크레이그 벤터 자서전 (추수밭·2009)을 번역할 때의 일이다. 149쪽에서 크레이그 벤터가 아드레날린 수용체를 분리해 분자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박사후 연구원 ‘Fuzon Chung’을 영입하는 장면이었다. 이름을 보아하니 중국계일 텐데 (중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인) 한어 병음 자모와도, 웨이드식 로마자와도 일치하지 않아서 그냥 ‘푸존 충’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자가 교정지를 보내면서 이름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나도 찜찜했던 터라 원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 사람은 책에 딱 한 번 등장하는 단역인데 다행히 참고문헌에 논문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런데 논문에 필자 전자우편이 나와 있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논문에 표시된 소속 기관에서는 이미 퇴사한 뒤였다. 인터넷에서 다른 논문을 뒤져 그가 미국 미시간대학 병리학과에 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병리학과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를 찾은 뒤에, 미국 시간으로 오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걸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연결되었다.
Fuzon은 자신이 책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 맞다며 한자 이름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었는데 그의 원래 이름은 ‘鍾富榮’이었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대로 읽으면 ‘중푸룽’이다. ‘Fuzon’은 영어식 이름을 따로 지은 것인데, 그는 영어식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이름을 영어식으로 표기하면서 성만 중국어식으로 두는 게 이상해서 ‘푸전 청’으로 결정했다.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하등의 관계가 없지만 무엇보다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고유명사 표기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용례에 있는 이름이면 그대로 따르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백과사전, 발음사전(나는 독일에서 출간된 을 쓴다), 인터넷 서점, 신문 기사, 발음 웹사이트를 뒤지고 그걸로도 안 되면 동영상을 검색하거나 마지막으로 외래어표기법 규칙을 적용한다.
우리가 외래어표기법을 지키는 이유는 소통을 위해서다. 이를테면 내가 번역한 (에이도스·2003)의 저자는 멜러니 선스트럼(Melanie Thernstrom)인데 교보문고 웹사이트에서 이 이름을 입력하면 전작 (이크·2003)가 검색되지 않는다. ‘멜라니 선스트롬’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뒤르켐, 뒤르케임, 뒤르켕, 뒤르깽, 뒤르카임, 뒤르크하임 등으로 불리는 Émile Durkheim은 국립국어원에서는 ‘뒤르켐’으로 표기하지만 한국사회이론학회에서는 ‘뒤르케임’으로 부른다.
고유명사의 발음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질 때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쪼잔함 없이는 완벽함도 없는 법이다.
노승영 생계형 번역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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