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일컫는 영어 단어 ‘트랜슬레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트란슬라티오’인데, 이 단어는 ‘건너서’를 뜻하는 ‘트란스’와 ‘나르다’를 뜻하는 ‘페로’가 결합된 것이다(김욱동, , 글항아리, 2011, 25쪽). 나는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자이니까, 강 저편 영어의 땅에 저자가 있고 강 이편 한국어의 땅에 독자가 있다. 독자가 저자와 대면하는지, 텍스트와 대면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으나 이 글에서는 독서를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 일종의 대화로 보기로 한다. 번역자는 사공이다. 그의 임무는 저자와 독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사공은 한국어 땅의 독자를 영어 땅에 데려가 저자를 만나게 해야 할까, 영어 땅의 저자를 한국어 땅에 데려와 독자를 만나게 해야 할까?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경우. 독자는 낯선 땅에 발을 디딘다. 풍경도 풍습도 물건도 낯설기만 하다. 독자는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저자를 우러러본다. 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고 싶다. 저자의 말은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다. 저자의 음성을, 저자의 독특한 말투를 있는 그대로 듣고 싶다.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고스란히 보고 싶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 탓이다. 낯선 진실이 있고, 나는 이방인이다.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오는 경우. 저자는 혈혈단신으로 낯선 땅을 밟는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지독한 사투리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평소처럼 말하면 독자는 저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저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다듬고 독자에게 친숙한 예를 든다. 자신의 땅이기에 독자는 주눅 들지 않는다. 나를 이해시키라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당신 책임이라고 말한다. 입증 책임은 저자에게 있다.
나루터에 배를 대고 한쪽 땅에서 둘을 대면시키는 게 아니라 강 한가운데 나룻배 위에서 상봉시키는 방법도 있다. 사공은 그때그때 솜씨를 발휘해 배를 이쪽으로 몰았다 저쪽으로 몰았다 한다. 영문 모르는 사람들은 배가 어느 나루터에 닿는지에만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초짜 사공이 영어 땅으로 향하면, 독자를 엉뚱한 나루터에 내려주기 십상이다. 물길도 모르고 저자가 어디서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배를 젓는다. 이를 일컬어 ‘영혼 없는 직역’이라 한다. 번역자는 저자가 어떤 의도로 문장을 썼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를 짝짓는다. 그런가 하면 게으른 사공이 한국어 땅으로 향하면, 배를 나루터 아닌 곳에 대충 접안하기 쉽다. 이를 일컬어 ‘얼렁뚱땅 의역’이라 한다. 번역자는 문장 구조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서 대충 감으로 끼워맞춘다. 언뜻 보면 그럴듯하지만 원문과 대조하면 터무니없는 오역도 곧잘 저지른다.
강호에서 벌어지는 번역 논쟁은 영혼 없는 직역과 얼렁뚱땅 의역의 사이비 논쟁인 경우가 많다. 부디 경험 많고 부지런한 사공을 만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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