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번역 중인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Instead of allowing her youngster to ride for a time, the mother reared up and shook herself violently to unseat the baby.” 번역 초보자에게 이 문장을 보여주면, 대부분 “어미는 새끼가 잠시 올라타게 내버려두는 대신에 일어서서 새끼를 격렬히 흔들어 내리게 했다”라는 식으로 번역한다. 사람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instead of’를 ‘~하는 대신에’로 번역하는 것은 한결같다.
그 이유는 영한사전에서 ‘instead (of)’를 찾으면 1번 뜻으로 ‘대신에’가 나오기 때문이다. 좋은 사전이라면 ‘of’ 뒤에 명사가 올 때와 동명사가 올 때를 구분하여 뜻을 다르게 풀이했을 테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것을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명사가 올 때에도 사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뜻인 ‘대신에’를 써서 번역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어미 ‘-은’ ‘-는’ 뒤에 쓰이는 ‘대신’은 ‘앞말이 나타내는 행동이나 상태와 다르거나 그와 반대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녀는 얼굴이 예쁜 대신 마음씨는 고약하다”라는 예문을 실어놓았다. 이 예문의 의미는 ‘그녀는 얼굴이 예쁘지만, 그 대신 마음씨는 고약하다’라는 뜻이다. 즉, 그녀는 얼굴이 예쁘다. 하지만 맨 앞 예문에서 어미는 새끼가 잠시 올라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번역 강의를 할 때 이렇게 설명했는데… 얼마 전에 (알마, 2014)에서 흥미로운 문장을 읽었다. “에라스무스는 교회가 지배하는 중세의 미망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대신에 풍자하고 조롱하는 길을 택했다”라는 문장에 문제가 있다며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대신에’ 대신 ‘대신’을 쓰라는 것이었다. 천하의 고종석 선생까지 ‘대신’을 엉뚱하게 쓸 줄이야! 그런데 트위터에서 @papermong님이 알려주어 다음국어사전(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대신’의 2번 뜻을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고 딴 일로 바뀌어 일어남’으로 풀이하면서 “우리는 이번 일 때문에 절망하는 대신에 새로운 각오를 가졌다”라는 예문을 실었다. 그러니까 고종석 선생의 문장은 비문이 아니라 한국어 어법에 맞는 올바른 문장이었다. 이에 따르면 ‘instead of’를 ‘~하는 대신에’로 번역해도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A 하는 대신에 B 하다”라는 구조에서 A라는 명제는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하는 대신’은 원래부터 두 가지 의미였을까, 아니면 어떤 계기로 의미가 추가되었을까? 이 용법은 한국어 고유의 것일까, 일본어 ‘~する代わりに’에서 왔을까? 앞으로 3주 동안 언어 자료를 조사하여 다음 칼럼에서 나의 추측과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함께 고민해주시길.
노승영 생계형 번역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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