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글쓰기를 하니까 맘이 좋다. 한 가지 하면 또 한 가지 생각나고 해놓고 봉게 더 좋다. 어치게 니가 그렇게 생각을 잘해서 나를 풀어지게 해놨냐.”
어머니는 이야기를 하고 부인은 그 말을 적고 남편은 그 글을 엮었다. 그렇게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가족은 (푸른숲 펴냄)를 함께 만들었다.
“자껏, 그거 만드느라 죽지도 못하것다”
한글 공부를 하는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왼쪽)와 부인 이은영씨. 푸른숲 제공
책은 “시어머니에게는 불리한”, 며느리의 기록장이다. 신랑 얼굴도 못 보고 시집온 날, 남편의 바람기에 힘들었던 날들, 육남매를 키우던 시절 등 시어머니의 살아온 날들을 적어 내려간다. 글 중간중간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던 일, 서운했던 점 등 고부간의 갈등도 녹아 있지만 둘 사이에 인간적 신뢰와 애정이 쌓여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병원에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던 86살의 시어머니. 점점 며느리와 자식들에게 원망과 하소연, 푸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소일거리라도 마련해주자는 생각에 바느질과 한글 공부를 권했다.
우연한 제안이 놀라운 변화를 불렀다. “쉽게 죽도 안 하고,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살끄나” 하던 시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며, 글을 쓰며 삶의 재미와 보람을 찾는다. 손녀 말고 며느리에게 줄 조각보도 만들어달라는 말에 “지랄한다, 자껏. 그거 만드느라 죽지도 못하것다. (하하하)”라고 되받아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 실력이 늘고 자수의 문양이 화려해진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자식들에게 줄 이불과 베갯잇을 만드는 어머니로서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이런 자신의 삶을 두고 “늦복이 터졌다”고 했고, 김용택 시인은 “결혼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기뻐했다.
시어머니이자 인생 선배가 찾은 늦깎이 행복은 며느리에게도 희망이 됐다. 당신의 일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20년 넘게 들어온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푸념이고 하소연이었지만 그 내용을 받아적는 순간, 시어머니의 말과 인생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더불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한글을 깨치고 침침한 눈으로 이불에 꽃잎을 흩뿌리는 어머니를 보며 ‘이 나이에 내가 뭘 못하겠는가’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받았단다.
‘늦깎이 행복’의 결과물들이 책을 수놓는다. 각 장마다 새겨진 시어머니의 삐뚤빼뚤한 손글씨. 맞춤법도 틀리고 투박한 글씨지만 설렘과 기쁨이 배어 있다. 손바느질로 만든 모시이불·베갯잇·밥보자기 등도 화보로 펼쳤다. 육남매에게 줄 마음으로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수를 놓았을 어머니의 깊디깊은 사랑이 전해지는 듯하다.
이렇듯 책은 시어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한글을 깨치며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는 과정과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통찰을 담고 있다. 평범한 노인이 보낼 수 있는 가장 풍성한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며 ‘행복한 노년’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국 하루하루를 복 터지게 사는 중요한 조건은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는 것에만 집착하느라 에너지를 쏟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것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우리의 노년을 위한 소중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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