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생들 사이에 ‘MT 간다’는 말은 ‘모텔에 간다’ 는 말의 줄인 말이라고 한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2012년 발표한 논문 ‘욕망의 사회사, 러브모텔’에 나오는 말이다. 그만큼 모 텔에 가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됐다는 뜻이다. 대학생 이민호(24·가명)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 해 처음 모텔 사이트를 접했다. 친구가 알려준 앱을 내 려받으니 주변 모텔의 가격과 정보가 한번에 나왔다. 언 젠가 모텔 사이트 광고도 본 기억이 났다. 실제 지난해 “데이트를 준비해라, 성공할 것이다”라는 모텔 정보·예 약 사이트 ‘야놀자’(www.yanolja.com) 광고가 지하철 내부에 붙기도 했다. 그는 자취방이 있지만, 여자친구 와 1~2주에 1번 정도는 모텔에 간다. 가끔은 1박을 하기 도 하지만 주로 낮에 간다. 적은 비용으로 만족도가 높 기 때문이다. 그는 “2만원이면 5~6시간 있을 수 있다” 며 “좋은 욕조에 입욕제도 있어 쉬기에 좋다”고 말했다.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하는 것보다 비용이 오히려 적게 든다.
6개월 사귄 여자친구와 처음 모텔에 갔을 때 도 낮이었다. 데이트를 하다가 “우리 한번 가볼 까” 해서 갔다. 지금은 여자친구도 “어디 모텔이 좋다더라”고 말할 정도다. 갈 곳을 고를 때, 모텔 사이트 후기도 참고한다. 그가 즐겨 가는 모텔은 동네에 1호점과 2호점이 있는데, 후기를 보니 2호 점 평가가 더 좋아서 그곳에 간다. “처음에 모텔 하면 이미지가 좋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대기할 때도 팝콘과 커피가 준비돼 있고, 컴퓨터도 있어 뻘쭘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별·테마별·가격별 모텔을 소개하고 예약 하는 ‘모텔 가이드’(www.moga.co.kr)에 들어가면, 모텔 이용 후기를 읽을 수 있다. 대전에 있는 한 모텔에 대한 후기는 “전 부산 살고 여친은 서 울 살아서 대전에서 만나곤 한다”며 욕조 사진에 는 “지중해 느낌이 난다”, 창문 사진에는 “별장 느낌이 물씬” 같은 경험담이 붙어 있다. 여기엔 쿠폰을 내 려받아 갖고 가면 할인이 되는 모텔들이 있고, 사이트에 서 나눠주는 콩으로 진행하는 제휴호텔 쿠폰 경매도 있 다. 운이 좋으면 무료숙박권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회원이 되면 숙박비를 할인해주는데, 특히 주중 대실료 가 저렴하다. 야놀자는 심부름 대행 서비스도 한다. “입 실 뒤 편의점으로 나가는 불편이 없으시도록 호텔 야자 직원이 인근 편의점 심부름을 대행해드립니다.” 심지어, 세탁물 서비스도 한다.
수백 개의 모텔과 제휴를 맺고 예약을 대행하는 모텔 사이트가 늘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가까운 모텔의 가격과 객실 현황까지 확인할 수 있다.사이트 화면 갈무리
이안나 부산대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이 2012년 발표 한 논문 ‘모텔 이야기: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생들의 모텔 활용과 성적 실천의 의미 변화’는 부산 지역 대학생 12명 을 상대로 한 심층면접에 기반하고 있다. 논문은 “과연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도 모텔은 ‘불륜의 장소’이며 연애 과정에서 성경험은 ‘위험한 일탈’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까?”라고 묻는다. 먼저 여기에 나온 대학생들의 모텔 첫 경험을 들어보자.
“오빠랑 둘이서 문 열고 들어서면서 동시에 ‘와~!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했어요. 깔끔하고 혼자 지내기에는 아까울 정 도로 넓었어요.”(여성 A)
“요즘 모텔은 호텔보다 좋아요. 여자친구에게 모텔 가 자고 꼬일 때도 저는 이런 걸 막 이야기해요. 놀이동산 보다 재밌다는 식으로. 놀러가는 거라 생각해라. 그러 면 막 웃으면서 ‘진짜 가’ 하고 물어요. 너랑 자고 싶 다고 대놓고 말하면 저를 검은 짐승으로 보거든요. … 솔직히 모텔 한번 가려면 할 일이 많아요. 사전에 인터넷 검색해서 거사 치를 장소에 대한 정보를 모아요. …‘야놀자’라는 모텔 포털 사이트 회원이 기 때문에 회원이라고 말하면 1만원 깎아주는데 여자친구랑 갈 때는 원래 요금 다 주고 들어가요. 틈틈이 준비해왔다는 게 들키면 쪽팔리고 쿠폰 쓰 면 좀 찌질해 보이고, 이제는 여친이 먼저 말해요. ‘어디어디 좋다더라’ 하면서.”(남성 A)
1990년대 도심 외곽에 위치한 러브모텔과 달 리 2000년대 중반 도심에 세워져 최신형 컴퓨터,
고급스러운 욕조,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숙박업소를, 이 나영 교수는 논문 ‘욕망의 사회사, 러브모텔’에서 ‘부티크 모텔’이라 부른다. 그는 “이전에 러브호텔이 섹스의 탈일 상화, 초현실화에 기반하고 있다면 현재 부티크모텔은 놀이와 쾌락의 공간으로 변모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 해 “숙(宿)과 식(食), 성(性)과 유(遊)가 결합된 공간으로 재구성”됐다는 것이다. 이안나 연구원도 최근의 모텔을 “놀이의 장소고, 휴식의 장소고, 대화의 장소다”라고 규 정한다.
여성의 데이트 주도권이 강해진 현실도 모텔산업의 변 화에 투영돼 있다. 궁전 모양 등 키치적 외양에 신경 썼 던 1990년대 러브모텔들 대신에 내부 인테리어에 주력 한 부티크모텔로의 변화는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섹슈얼리티의 변화를 ‘러브모텔’을 통해 분석한 이나영 교수의 논문은 숙박업 관계자의 증언을 전한다.
이안나 연구원은 신자유주의 시대, 사랑도 능력이 되 고 사랑만이 유일한 안식처가 됐다고 지적한다. “세상 살이가 나날이 각박해지고, 지금까지 믿었던 일체의 규 범들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사랑만 이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여전히 성규범 의 눈치를 보면서도 규범을 재구성하는 실천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공간으로 모텔을 주목한다. 외박을 하려 면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 에게 대실은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안나 연구원의 논문 은 대학생들이 “부모와 부딪치는 것은 ‘쓸데없는 저항’이 며 그렇다고 모텔을 포기하는 것 역시 ‘바보 같은 짓’이 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이러다 생기는 에피소드도 있 다. “순간이동하고 싶다”는 여자친구와 함께 들어간 무 인모텔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이안나 연구원의 논문에 담겨 있다.
편안한 침대만이 모텔의 전부가 아니다. 대형 평면TV, 스파시설, 고가의 음향기까지 갖춘 모텔이 늘고 있다. 여기는 단순히 자는 곳이 아니라 놀고 쉬고 대화하는 곳이 된다.한겨레 자료, 이병학.
이렇게 들어간 곳에서 젊은이들은 친밀감을 나눈다. 모텔은 단지 성을 나누는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누 워서 대화를 하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곳이다. ‘모 텔 가이드’ 등에는 파티룸을 갖춘 모텔들이 따로 소개돼 있다. 가끔은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는 공간으로 모텔은 쓰인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방이었던 모텔도 일상이 되 면 ‘오래된 연인’의 피로감이 몰려드는 장소가 된다. 이안 나 연구원의 논문은 그렇게 모텔이 일상이 된 커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이안나 연구원은 “대학생들은 연인과 모텔을 찾는 빈도수가 확연히 떨어지게 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 도 서로 헤어질 때임을 직감한다”고 전한다. 주변화된 성 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모텔이 일상화되는 과정을 추적 한 이나영 교수의 논문은 최근 젊은이들의 모텔 이용을 “더러움의 (밤의) 공간으로 추방되었던 (남성중심적) 육 체적 욕망을 재전유하는 다양한 공간적 실천의 가능들 을 보여줌으로써 여관을 새롭게 의미화하고 적극적으로 재구성한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순응과 위반 사이에서 우리들의 모텔은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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